헝그리 플래닛 피터 멘젤, 페이스 달뤼시오 지음 / 김승진, 홍은택 옮김 / 윌북 발행 / 2만5,000원

호주 아웃백에 사는 원주민들은 야생 캥거루나 도마뱀을 잡아 구워 먹는다.

그린란드의 사냥꾼은 바다표범을 잡아 가족들을 먹인다. 차드 국경지대로 넘어 온 수단 난민은 바닥에 죽 냄비 하나를 놓고 10명이 둘러 앉아 먹는 반면 미국 중산층 가족은 가공식품을 잔뜩 먹으며 어떻게 하면 살을 뺄까 고민한다.

이 책은 이렇게 다양한 나라의 가족들의 식탁을 카메라에 담아 세계인들이 어떤 식사를 하고 있는지를 전해주는 책이다. 세계 24개국의 30가족들의 식사 생활을 다룬 각 장은 모두 각 가족이 1주일 동안 소비하는 모든 식품을 늘어놓고 찍은 한 컷의 사진으로 시작된다.

이어 1주일치 식품의 상세 목록과 식비, 그 가족이 자랑하는 대표 요리와 요리법 등을 나열하고 구체적으로 가족 구성원들과 식생활을 인상적인 사진과 글로 동시에 풀어낸다.

저명한 보도사진 기자 피터 멘젤과 뉴스 프로그램 연출자 출신의 작가 페이스 달뤼시오 부부가 5년 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과 취재 기록을 정리한 이 책은 그러나 가벼운 ‘음식문화 기행’ 서적은 아니다.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은 세계 각국의 음식 문화를 통해서 그들이 처한 환경과 삶의 방식을 손에 잡히듯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이어 세계화가 진전되고 세계 식량사정이 나아지면서 식습관에도 공통적인, 그러나 좋지만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렇다고 주의 주장을 내세우는 선동적인 책도 아니다. 실제 모습 그대로를 카메라의 렌즈처럼 그대로 투영하는 데 집중한다.

호주 아웃백 원주민인 브라운씨 가족은 원래 양을 키워 잡아 먹고 캥거루, 포큐파인을 사냥했지만 도시 근교로 이주한 뒤에는 슈퍼마켓에 가서 식료품을 사 온다. 손자 손녀들은 KFC나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에 열광한다.

부탄 싱케이 마을의 날림과 남가이 가족은 수입이 얼마 없기 때문에 집에서 야채를 길러 먹고 소젖을 짜 먹는 등 가급적 자급자족으로 해결한다. 1주일치 식비가 우리 돈으로 4,620원에 불과하다.

처음으로 이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지만 전구를 살 돈이 없다는 게 고민인 이 마을에도 잔치에 펩시콜라가 등장한다.

잔혹한 내전을 겪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에 사는 두도씨 가족은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지만 이제 시장에서 1주일치 식품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데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이곳에서도 아이들은 엄마가 직접 만들어 준 간식보다 오히려 가게에서 파는 장난감이 들어 있는 과자를 더 좋아한다.

일본 오키나와의 촌 동네에 사는 96살 마츠 할머니는 야채를 직접 길러 먹는다. 패스트푸드니 햄버거니 하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런 오키나와의 장수 신화도 위협을 받고 있다.

50세 이하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 전체 평균에 비해 비만 비중이 높고 심장, 간 질환이나 조기 사망 위험이 더 높다는 것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서구식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을 먹기 시작한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선진국부터 개발도상국까지, 슈퍼마켓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가공식품, 포장된 반조리 식품이 즐비하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고기와 가공식품을 많이 소비하고, 먹는 양 또한 어마어마하며 음식을 사는 데 지출하는 비용도 많아진다.

특히 햄버거나 프렌치프라이 등 패스트푸드점의 음식을 한번 맛본 아이들은 부모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건강에 나쁜 이 음식에 열광한다. 이처럼 가공식품을 많이 소비하는 선진국 중산층은 비만해지고 성인병이 생긴다.

점심으로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를 섭취하면서 저녁에는 다이어트를 위해 끼니를 굶고 헬스클럽에 가는 모순적 행동도 한다.

세계 음식 문화를 순례하고 모순을 발견한 저자 부부의 식생활은 어떨까? 이들은 취재 여행을 하지 않을 때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의 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직접 기른 유기농 식품으로 식사를 하는 로하스 생활을 한다.

물론 독자들까지 저자들의 자급자족 생활을 본받을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최소한 우리가 어떤 먹거리를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경험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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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