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더 빛나는 상록성 식물

춥고 메마른 겨울엔 식물의 매력을 절감하기 쉽지 않다. 물론 앙상하게 드러난 나뭇가지의 섬세한 아름다움이나, 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나뭇가지의 특별함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이를 알아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졌다면 이는 분명 식물을 사랑하고 있는 식물에 대한 고수임에 틀림없다.

아무래도 겨울엔 한 눈에 들어오는 꽃도 잎도 없을 뿐 아니라 반짝이는 생명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겨울에 유독 눈 여겨 보게 되는 식물들도 있는데 마삭줄도 그 중에 하나이다. 알고 보면 마삭줄은 겨울이 아닌 초여름에 꽃이 핀다. 흰색으로 피어 연한 노란색으로 변해가는 꽃송이들은 5장의 꽃잎이 약간씩 수레바퀴처럼 휘어져 달리는데 여간 곱지 않다. 순박하기보다는 현대적인 느낌의 꽃이랄까?

게다가 향기로 치면 정신을 놔 버릴 만큼 대단히 황홀하다. 꽃이 지고 달리는 짧은 젓가락 길이만한 길쭉한 꼬투리모양의 열매도 아주 개성 있고 멋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삭줄을 이런 계절에 더 많이 기억하는 까닭은 상록성 식물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녹색이 드문 겨울에 새끼손가락 길이의 타원형의 잎들은 자유롭고도 왕성하게 달리는 줄기에 마주 달린다.

잎맥이 적절히 발달하고 때론 맥을 따라 연 노란빛깔의 무늬가 생기기도 한다. 진한 초록빛의 두껍고 싱그러우며 윤기 나던 잎들은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며 겨울로 이어 지면서 약간 붉은 빛깔의 물이 들기도 한다. 개개의 나무마다 그 정도에 차이가 있어서 어떤 나무들은 채도가 높으면서도 진한 붉은 빛으로 물들어 오래오래 그 모습으로 꽃 대신 화려한 겨울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게다가 이 나무는 덩굴식물이다. 사방에 한껏 줄기를 늘어뜨리고 혹은 나무를 감거나 바위를 타고 더러 숲속의 바닥을 기면서 자라가는 모습에선 자유로움이 절로 느껴진다. 숲에 사는 토종식물이면서도 현재적인 느낌의 모습도 함께 보여 돋보여 신선하다.

그래서 생각보다 마삭줄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겨울에도 상록성 잎에 물든 오묘한 단풍빛과 자유롭게 모양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줄기의 특성으로 여러 품종을 임의로 만들어 이름 붙여 즐기기도 한다.

간혹 백화등이라고 부르며 키우는 종류도 있는데 이는 마삭줄과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 잎이나 꽃들이 모두 큰 것을 말한다. 분에 담아 키워도 작은 돌에 붙여 올려 키우면 아주 멋들어진 모습이다. 다만 남쪽에 자라는 식물이어서 중부지방에서 집밖에선 겨울을 날 수 없어 아쉽기는 하다.

한방에서도 제법 이름이 높다. 생약명으로는 낙석등(絡石藤)이라고 하는데 관절염, 각기, 무릎이 시큰시큰 쑤시고 아픈 데, 고혈압 등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술에 담그어 먹는 것이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고들 한다. 본초강목, 동의보감 등에도 많은 약효들이 나와 있다. 마삭줄 줄기를 자르면 흰색의 유약이 나온다. 자칫 유독할 수도 있으니 꼭 확실한 처방을 가지고 사용해야 할 것이다.

붉게 물들어 가던 마삭줄 잎새들은 자줏빛으로 깊어가고 이내 새봄이 돌아올 것이다. 우린 다시 마삭줄이 꽃향기에 취할 수 있는 계절을 향해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다만 그 빛의 아름다움과 향기의 매력을 느낄 만큼은 자연에 마음을 열어두었으면 싶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