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무법자' 상징하는 여성 운전자… UCC 인기 바람 타고 TV CF 등장'목욕탕 가는 김여사'등 수십 편 온라인 공간서 인기 절정"엽기적 재미도 좋지만 성차별 요소 많다" 비판도 잇따라

“리터당 최고 500원 할인 누가 할 수 있을까?”

‘주유소 사장님’, ‘아랍왕자’, ‘김여사?’, ‘LG텔레콤’

고유가시대 주유할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묻는 스피드퀴즈 형식의 LG텔레콤 TV광고다.

제시된 보기들 가운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항목이 있다. ‘김여사’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김여사 UCC(손수제작물)’가 연일 화제가 되면서 ‘김여사 시리즈’를 유행시키고 있다.

‘김여사’는 평범한 아줌마를 일컫는 호칭이 아니라, 교통법규를 준수하지 않거나 소통흐름에 방해가 되는, 운전이 서툰 여성 운전자들을 통칭해 비유적으로 쓰이고 있는 용어다.

달리는 도로 한 가운데 차를 세워 트렁크에서 짐을 꺼낸다거나, 넓은 주차구역에 달랑 차 한대만을 세우는 행위, 복잡한 도로에서의 역주행이나 거침없는 불법 U턴 모두 UCC 속 김여사가 서슴지 않고 보여주는 행동이다.

‘목욕탕 가는 김여사’, ‘사람인냥 횡단보도로 길 건너는 김여사’, ‘정리정돈 김여사’ 등 미숙한 여성 운전자의 사고나 실수 모습을 모은 ‘김여사 시리즈’는 종류만해도 수십 편이 넘지만 네티즌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 등 해외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사건들까지 재구성해가며 ‘김여사 해외 원정기’같은 새로운 김여사 시리즈물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황당하고 엉뚱한 아줌마 운전자들의 모습을 담은 ‘김여사 시리즈’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자 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기업의 제품광고에도 ‘김여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LG텔레콤 광고는 물론 LG전자가 제작한 ‘김여사, 공기청정기 구입도 좌충우돌’ 이라는 홍보용 UCC의 효과는 가히 성공적이었다. 이 UCC는 공기청정기를 렌털하는 것보다 구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운전 솜씨가 엉망인 김여사가 주차를 제대로 못해 우왕좌왕하는 상황에서 휴대전화로 공기청정기 구매요령을 전해 받는다는 줄거리다. 업체 홈페이지에 10여일 동안 게재된 UCC는 26만 건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3천명 이상의 네티즌들이 블로그와 미니홈피로 스크랩해갔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인터넷에서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28·남)씨는 이와 관련해 “실제로도 무작정 끼어들기를 하거나 마음대로 주차를 해놓은 사람들을 보면 중년 여성일 때가 많았다”며 “동영상이 다소 과장된 것은 사실이지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김여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폭되자 한 방송프로그램에서는 직접 남성운전자와 여성운전자의 운전실력을 비교하는 실험을 실시해 여성들이 전방에 비해 후방이나 측면에서의 위험 감지 능력이 남성보다 떨어질 수 있다는 실험결과를 전하기도 했다.

한편 재미로 시작된 동영상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서 ‘여성을 비하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도 함께 거세지기 시작했다.

‘김여사 시리즈’가 보여주는 기발함과 엉뚱함이 재미와 웃음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여성 운전자들을 비하하는 의식을 내포하고 있어, 사회적으로 그릇된 선입견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김여사’라는 용어 자체가 성차별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네티즌 박모(26·여)씨는 “남성들 중에도 운전이 미숙한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이양반’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며 김여사 신드롬을 꼬집었고, 김모(29·남)씨 역시 “운전 잘 하는 여성들도 많은데 예외 없이 여성 운전자들을 너무 몰아 부치는 것 같다”며 지나치게 과장된 동영상들이 이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밝혔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이것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인터넷상에서는 평소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편견이나 선입견을 거리낌 없이 노출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희화화하며 놀이의 대상으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 돼준다는 것이다.

아울러 ‘김여사’라는 단어는 대한민국의 가장 보편적인 성씨 중 하나인 ‘김’과 사회적으로 명성을 갖춘 여성에 대한 존칭인 ‘여사’의 합성어라는 이유만으로도 풍자의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고 덧붙였다.

‘김여사’ 뿐만 아니라 여성을 지칭하는 신조어 만들기 현상은 이미 된장녀, 알파걸, 골드미스 논쟁이 한차례 신드롬을 형성했을 만큼 우리사회 내 유행처럼 번져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범위가 젊은 여성이나 능력 있는 여성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부나 아줌마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안상수 연구위원은 “여성과 관련한 신개념들이 여성에게 호의적인 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성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다”며 “오히려 신조어들은 선정적이고 가시적인 표현으로 성차별을 부추기며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안 연구위원은 또 “남성도 이런 신개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소수의 집단, 특정한 집단을 희화화 하는 데서 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해서 여성에만 초점이 맞춰지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사이버상에서 이슈가 되는 것들은 소수의 특정집단에 한정된 것이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여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지칭들이 여전히 기존의 선입견을 자양분으로 한 단순재미거리로 밖에 취급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진정한 신여성의 상징적 의미 확보를 위해서는 사회적 의식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전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