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문신'전 통해 다시 본 세계적인 조각가의 예술 세계민족의 격동기에 새로운 화풍으로 한국미술 전환점 마련한 선각자

문신의 자화상(1943년 작)

우리에게 문신(文信, 1923- 1995)은 자연과 생명의 작가, 대칭과 균형의 미학을 실천하고 구현한 조소예술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한국현대미술의 초석을 쌓은 화가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문신은 조소예술가 이전에 일제 강점으로부터 광복을 맞은 1945년부터 그가 프랑스로 떠나기 전인 1961년까지 화가로서 괄목할 만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16세에 일본 동경 미술학교에 입학해서 유화를 공부했고 광복과 함께 귀국해서는 10여회의 유화작품전을 개최한 화가였다.

문신의 거의 알려지지 않은 화가로서의 이력과 그의 당시 작품을 통해 그의 회화적 성과를 되돌아보는 <화가 문신>전이 고양시에 소재한 어울림미술관에서 지난 3월 5일 개막하여 4월 13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문신의 새로운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 일 뿐 만 아니라 한국미술사의 폭과 깊이를 더해줄 귀한 기회가 되고 있다.

문신이 화가로서 활동했던 시기는 광복과 정부수립 그리고 한국동란과 종전이라는 민족의 격동기이다. 그는 이런 격변기에 예술가로서 처절할 만큼의 정열과 노력으로 그의 회화를 완성시키는 동시에 고향인 마산을 시작으로 서울과 부산 등 전국을 누비면서 왕성하게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가치는 왕성한 활동에도 있지만 실질적인 회화사적 의미는 일제 강점기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화풍과 일본의 인상파적 경향 즉 자파(紫派)의 영향을 극복하고 새로운 화풍으로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명적인 화가였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자연을 담담하게 그려내던 당시 화단분위기를 표현주의와 야수파의 화풍을 통해 일거에 깨버린 그는 한국회화에 모더니즘적 태도와 입장을 도입한 몇 안 되는 화가 중 하나이다.

문신의 귀국은 한국현대회화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큰 사건이었다.

‘단순화된 포름’과 선명한 ‘원색적 색조’ 그리고 ‘대담한 터치’로 새로운 화풍으로 신풍을 일으켰다. 그의 회화는 모더니즘에 기초해서 자연을 대상으로 하지만 작가의 시각과 관점을 통해 대상을 단순화하거나 또는 형태를 왜곡시키면서 조형성을 실험함으로써 한국미술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종전 후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긴 그는 명동의 동방살롱, 휘가로 등에 출입하면서 박수근, 한묵, 박고석, 유영국, 황염수, 이규상, 정점식 등 당시의 미술인들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예술의지를 다져갔고 모더니즘적 사고와 시각을 펼친 <모던아트협회>에 가입하면서 판에 박힌 그림을 버리고 자유스러운 미술운동의 기수가 되었다.

이렇게 그의 활동은 화가로서 한국현대미술의 초석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그간 한곳에 모아서 볼 기회가 없었던 화가로서 문신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민족의 가장 척박했던 시기, 마음만은 부자였던 당시 작품들을 통해 우리미술사의 새로운 면모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미 반세기를 훌쩍 넘겨버린 문신의 작품과 드로잉을 통해 그의 새로움을 향한 간단없는 노력을 되새길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자그마한 미술관의 작품치곤 적잖이 맵다.


정준모 미술비평 curatorjj@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