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나무 숭배에 가려진 약탈적 벌목에 대한 저항… 환경시대 걸맞는 메시지 담아■ 황금가문비나무존 베일런트 지음 / 박현주 옮김 / 검둥소 발행 / 1만2,000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퀸샬럿제도. 초록으로 빽빽이 둘러싸인 숲 속에 300년 된 신비로운 황금가문비나무가 서 있었다. “지상에서 보면 그 놀라운 색깔은 사람들이 가던 길을 당장 멈추게 했다. 공중에서 보면 나무는 봉화처럼 눈에 띄었고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섬에 사는 하이다 원주민들은 이 나무를 ‘조상 가문비나무’라는 뜻의 ‘키이드 키야아스’라 부르며 숭배했다. 이 제도의 수많은 나무들을 싹쓸이 벌채하는 벌목 회사들조차 그곳의 상징이 된 희귀한 이 나무는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1997년, 벌목공 출신 나무 지킴이로 변신한 그랜트 헤드윈이라는 사내가 황금가문비나무를 베어버리고 만다. 캐나다인들에게 이는 마치 얼마 전 한국에서 벌어진 숭례문 방화사건처럼 충격적 사건이었다. 헤드윈은 이후 재판을 받으러 가다 실종됐고, 그의 소지품만 실은 카누만 발견된다.

헤드윈은 왜 벌목공에서 나무 지킴이로 변신했으며, 왜 이런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황금가문비나무는 영영 이 세상에서 볼 수 없게 된 것인가.

저자는 실제 일어났던 ‘황금가문비나무 살해 사건’을 둘러싼 이런 의문들을 헤드윈의 생애를 서술하면서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논픽션이지만 매력적이고 유려한 묘사는 마치 문학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동시에 태평양 연안 우림의 아름다운 자연과 생태계, 나무를 숭배하는 하이다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 유럽인과 하이다 원주민의 역사적 충돌 등을 상세한 취재를 통해 전달한다. 이를 통해 문명과 자연의 충돌 현장인 거칠고 위험하며 잔인하기까지 한 벌목의 세계를 고발한다.

결국 그랜트 헤드윈의 황금가문비나무 살해는 이 지역에서 자행되고 있던 약탈적 벌목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저지른 상징적 행위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환경 단체들과 하이다 원주민들이 벌목 세력들과 주 정부에 맞서 싸운 결과 황금가문비나무 주변의 원시림 몇 에이커가 보호되기에 이르지만, 오히려 주변 우림의 벌목 문제에서 관심을 돌리게 하는 결과가 생겨나고 말았던 것.

헤드윈은 황금가문비나무를 쓰러뜨린 뒤 한 지방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는 대량으로 학살당하고 있는 나머지 숲들은 내버려 둔 채 황금가문비나무 같은 개별 나무들에만 주목한다”면서 “모든 사람이 그것들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그 배후에서 벌어지는 온갖 피해들은 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동기가 어떻든 그것은 정상적이라기보다는 ‘강박적’ 환경 사랑에 가까웠고, 캐나다인 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그 문제의식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벌목이니 삼림 파괴니 하는 것이 브라질 아마존 얘기인 줄만 아는 사람들도 이 책을 통해 전세계 우림에서 자행되는 삼림 파괴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벌목에 의한 삼림 파괴는 지구 온난화의 위협까지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해 말 발리에서 개최된 제1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자 총회에서는 온실가스 감축뿐 아니라 남벌로 인한 산림 파괴(deforestation) 문제가 중요한 의제 중 하나로 다루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로 합의했다.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탄소를 흡수하는 우림지대가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한 유명 외국 잡지로부터 ‘환경영웅’이라는 칭호까지 받은 신임 대통령은 희귀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전국토의 지도를 바꿀 정도로 거대한 개발 프로젝트를 기어코 시작할 모양새다.

습지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고 여러 유물 유적이 수몰되며 배를 타고 지나가는 데 무려 2시간 넘게 걸리는 터널을 백두대간을 뚫고 만든다고 한다. 야만적 행위를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데 동참할 것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며, 그 뒤에 느낀 상실감은 끝까지 치유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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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