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없는 정물화'가 남긴 영원한 그림자사물 자체에 시선을 집중시킨 독특한 빛의 처리… 조형적인 균형미도 뛰어나

야생의 아름다움은 한때지만, 명화 속의 생화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 폴 세잔(1839-1906)의 <푸른 화병>은 그의 1880년대 말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정물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말한대로, 12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생생한 모습으로 폴 세잔의 화병과 탁자에 놓여있다. 아름답고도 안정된 느낌, 묘한 활기를 준다. 완전히 사실적이지도, 그렇다고 추상적이지도 않은, 그의 오묘한 미학이 느껴진다.

<푸른 화병>에는 그림자가 없다. 이 걸작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이다. 이에 대해 그림의 대상이 된 정물의 위치에서 따졌을 때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 방향으로 빛이 던져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있게 오가고 있다. 그림자를 없애는 이러한 빛 처리법은 사물 자체에 오로지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효과적이다.

또한 사물의 윤곽을 가장 뚜렷이 드러낼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일상적인 사물이면서도 어쩐지 뭔가 새로운 것을 대하듯 낯설게 느껴진다. 작가가 의도한 점이다. 이 특징과 관련해 몇몇 상징주의 작품들과 유사종으로 묶이기도 한다. 특히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이 폴 고갱의 정물화 <만돌린이 있는 정물>이다. 작가 에밀 베르나르나 모리스 드니 등 이같은 세잔의 화풍에 매력을 느낀 이들도 여럿이다.

조형적인 균형미도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형과 상투성을 피한 세잔의 개성이 그림의 구도, 정물의 배치에서 엿보인다.

테이블의 존재를 드러내면서도 그 아랫면을 다소 불안정하게 잘라 굳이 하단에 구성하고, 테이블 위 그리고 그 너머의 구역 사이에 밝고 어두운 차이가 나도록 그려 공간감의 대비, 비통일성의 멋을 세련되게 구사했다. 그림 중앙의화병 옆으로 띄엄띄엄 ‘일렬 횡대’로 늘어놓은 과일의 배치법도 세잔의 작품에서 곧잘 등장하는 특성이다.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도 여전히 갓 그린 정물처럼 풋풋하고 싱그럽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화면 전체의 색감을 지배하는 푸른 색의 영향 또한 크다. 실루엣을 또렷이 강조한 푸른 색 화병에는 역시 푸른 색 식물이 꽃병에 꽂힌 채 상단까지 장식하며 시선 끝에 걸리고, 탁자 너머의 벽 또한 파스텔톤 푸른 빛이 생기있게 덮고 있다. 안정적이면서도 무겁지 않고, 경쾌하면서도 경박하지 않은 푸른 빛이다.

폴 세잔은 생전 덩치가 크고 짙은 갈색의 곱슬머리와 긴 수염을 가진 미남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만년의 그를 만나 본 이들은 한결같이 ‘퇴역군인처럼 보였다’고 말할만큼 외양이 많이 무너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애 내내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깊고 반짝이는 눈빛이었다.

폴 세잔은 청년기의 얼마간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회에 참여한 뒤 세상의 평판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인 엑스프로방스로 돌아가 자신만의 예술세계에 파묻혔다. 자신의 작품이 팔릴 것인가 아닌가에 그닥 관심도 없었으며, 독특한 자신만의 규칙과 습관 속에서 스스로 제기한 예술적 문제점을 스스로 해결하는 데 전 생애를 바쳤다.

하나의 정물화를 완성하기 위해 100여회의 작업을 했다거나, 초상화를 그릴 때 모델을 150번이나 자리에 앉혔던 사실 등 수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제자도 없이 내내 혼자만의 작업을 진행했다. 모친이 사망한 날 오후에도 붓을 들었던, 열정 그 이상의 예술가였다. 1890년작. 캔버스에 유채. 62x5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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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