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횡포·부조리가 횡행하는 현실고발날카로운통찰·혜안으로 참된 세계화의 지름길 제시'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홍민경 옮김/ 21세기북스/ 25,000원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도와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세금을 ‘포기’하고,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의 국민들을 위해 지적재산권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서, 국민들이 의약품을 원가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무임승차’ 비판이 가로막는다면? 저자는 “선진국이 부담해야 할 추가적인 비용은 없는 한편, 개발도상국으로서는 ‘목숨이 걸린’ 이익이 막대하므로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말한다. 바야흐로 국가대 국가간의 ‘노블레스 오블리지’ 시대 개막을 보는 듯 하다.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는 인도주의적인 세계 공생법을 고민한 저자의 날카로운 원인 분석과 대안이 담긴 국제경제서다. 전작인 밀리언셀러 <세계화와 그 불만>에 뒤이어 터뜨린 저자의 후속타이자 해답안이기도 하다. 전작이 ‘문제제기’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 책은 ‘해법’에 중심을 두었다. 이만큼 광범위하면서도 충실하며 통렬한 답문도 보기 흔치 않다.

‘세계화’가 포함하는 그 방만한 영역을 다루기 위해 저자는 분야별로 주제를 나누어 조목조목 실태와 구조적 원인, 제언을 싣고 있다. 주제는 세계화 개혁의 필요성, 지적재산권의 균형과 조화, 자원부국과 경제빈국의 문제, 지구온난화의 해결방안 등으로 다양하게 나뉘어져 있다.

‘평평한’ 세계화를 위해 저자가 거론한 문제중 몇가지만 추려본다. 국가간 무역 및 통상에 있어서 저자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과 달리,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미국과 멕시코의 격차를 더 심화시킨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의 경우에서 보듯, 세계를 우방국과 비우방국으로 양분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미국의 강력한 입김으로 인해 협정 자체도 불공평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음을 여러 사례들을 통해 역설하며 이에 대한 대안을 적극 제시하고 있다. 한미FTA 비준을 앞두고 있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특히 남의 일 같지 않은 대목이다.

지적재산권의 문제도 심각하다. 저자는 TRIPs(무역관련 지적재산권)가 개발도상국의 복제약(카피 약) 생산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빈곤국의 에이즈 환자들이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제3세계 국가들의 전통적인 지식과 자생식물을 특허출원하는 일명 ‘생물해적질’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이에 대해 에이즈 치료제와 같은 생명구호 의약품은 개발도상국에서 충분히 쓸 수 있도록 접근성을 늘려야 한다고 강력제언한다. 관련한 구체적인 정책안들이 다각도로 제안돼 있다.

천연자원 부국이 오히려 빈곤국이 되는 현상에 대한 저자의 지적과 해법은 특히 흥미롭다. 저자는 이 모순의 극복을 위해 군사독재정권하에서 가져다 쓴 부채(‘불쾌한 채무’)를 탕감해주고 국제파산법을 제정하는 등 온 국제사회가 함께 협력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석학이 쓴 경제서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명쾌한 문체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예시들과 주장으로 일목요연하게 씌여져 있어 독자에게 쉽고 편안하게 읽힌다.

명료한 논점 전개 방식과 날카로운 ‘위트’도 돋보인다. 게중 가장 큰 장점은 저자의 근본적인 인도적 세계관이다. 특히 자신이 몸담고 있는 미국으로부터의 ‘자성’과 ‘솔선수범’에서부터 상당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짚어내고 있어 남다른 신뢰감을 준다.

남은 것은 이같은 세계화 방안에 대해 세계, 특히 선진국들이 어떤 공론의 테이블을 마련하느냐의 몫이다. 와중에도 분명한 것은 이같은 공존상생의 원칙이 빠진 세계화는 그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하든 허울좋은 껍데기 글로벌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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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