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미술가 백자은 씨의 '프라우나 주얼리 티파니' 바이어들 주문 폭주브로치 문양에 크리스털 조각 접목… 동서양의 미가 접시 위에 빼곡이

아티스트 백자은씨와 작품 '티파니'
“처음 시도하는 디자인이라 어떨지 궁금했는데 반응이 좋았다니 저도 신기해요. 어쨌든 많이 팔렸다니 기쁩니다.”

지난 2월 독일에서 열린 ‘암비안떼’ 전시회. 주방과 생활에 관련된 모든 제품들이 선보인다고 해서 ‘소비재 시장의 어머니’로도 불리는 세계 최대의 리빙 제품 전시회다. 이 곳에 국내 최고급 브랜드인 ‘프라우나 쥬얼리’를 출품한 한국도자기 관계자들을 놀래킨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러시아와 중동의 부자들이 매우 좋아했습니다. 가격에 구애 받지 않고 특별한 것을 찾는 신흥 부자들을 겨냥해 이들 국가의 바이어들로부터 주문이 폭주했거든요.” 전시된 여러 제품들 중에서도 특히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프라우나 쥬얼리 티파니’. 다름 아닌 국내 디자이너가 선보인 도자기 제품이다. 그것도 도자기 전문 디자이너가 아닌 순수 미술작가의 디자인 작품이란 이유 때문이다.

사건(?)의 주인공은 회화 미술가인 백자은씨. 그녀는 올 봄 자신의 도자기 브랜드 ‘티파니’로 도자기 시장에 ‘디자이너’로 정식 데뷔한다.

그녀가 도자기에 ‘그려낸’ 디자인은 쉽게 보아 ‘브로우치’ 문양. 엄밀히 말해 목걸이 같기도 하고 펜던트가 될 수도 있다. “엄마가 안 쓰시는 목걸이를 제가 ‘부셔서’ 디자인해 브로우치 스타일로 만들었어요.” 실물로 만들어도 보고 또 도자기 그릇에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새하얀 바탕의 접시에 그려진 그녀의 첫 작품은 일견 심플해 보인다. 가장 자리 한쪽을 브로우치 문양이 차지하고 있고 반대편에는 마치 ‘꼬리’처럼 한 가닥 줄 무늬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무늬 하나하나, 줄 마다 가득 박혀져 있는 ‘크리스탈 조각’들. 반짝반짝 빛을 내는 조그만 이들 크리스탈 조각은 말 그대로 ‘럭셔리’한 느낌을 전해 주고도 남는다.

제가 동양적인 것들을 좋아해요. 모양이 흡사 고가구나 문갑에 달린 고리나 손잡이 같기도 하잖아요.“ “서로 반대되지만 동서양이 만나는 것을 특히 선호한다”는 그녀의 ‘첫’ 작품은 그래서 ‘네모난’ 모양의 윗 부분은 동양적이지만 아래로 주렁주렁 매달린 줄들은 활동적이면서도 서양적인 인상을 던져 준다.

백씨의 이번 디자인은 3가지 제품들에 적용됐다. 둥그런 접시와 커피컵 세트, 그리고 머그컵 등. 으레 도자기 그릇이라면 꽃이나 나비, 간혹 강과 산 등 자연이 그려진 것이 대부분. 하지만 그녀의 도자기 작품에는 ‘쥬얼리’가 들어 가 있다. “그릇에 목걸이나 쥬얼리가 들어 간다니 재미있지 않아요?!”

특히 그녀의 이번 도자기 디자인이 업계에서 커다란 관심을 끄는 이유는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기 때문 만은 아니다. 무엇 보다 이번 작품이 도자기 업계에서 처음 시도된 도전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국내 도자기 업계에서 전문 도자기 디자이너가 디자인하지 않은 작품을 찾아 보기는 거의 힘들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부분 자체 회사 디자이너를 활용해 그려내거나 외부 인사를 쓰더라도 전문 디자이너들에게 의뢰하고 있는 것.

독일 암비안떼 리빙전시회에 마련된 한국도자기의 프라우나 주얼리 전시장 (한국도자기 제공)

국내 업계 1위의 도자기 제조업체인 한국도자기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 대부분은 자체 디자인실의 디자이너들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도자기 내의 여러 브랜드 중 최고가이면서 최고급 럭셔리 모델인 ‘프라우나’ 브랜드는 거의 외국인 디자이너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 영국 이탈리아 등 고정적으로 계약된 외국인 디자이너만 5명에 프리랜서 디자이너도 여러 명이 활동중이다.

때문에 백자은씨의 프라우나 브랜드 제품의 디자인 참여는 ‘한국인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이란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것도 국내 최고급 브랜드 도자기 디자인을 한국인 디자이너가 맡게 됐다는 점에서 무척 고무적이기도 하다. 해외 디자이너들에만 의존하던 패턴을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에서다.

더욱이 해외 전시회에서 즉각, 그것도 매출에서 반응을 얻어냈다는 것 또한 예상치 못한 보너스로 받아들여진다. 당시 현지에서 거둔 126만 달러(약 12억여원)어치의 프라우나 제품 수출 계약 성사에 큰 공헌을 한 것은 물론이다. 업계에서도 국내 도자기업계 및 디자인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벌써부터 내리고 있다.

하지만 백씨의 도전이 그리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도자기 업종이 아닌 다른 많은 분야의 디자이너들로부터 작품들을 수시로 받아 봅니다. 하지만 실제 ‘작품이 제품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열에 하나도 찾아 보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도자기 김소연 디자인실장은 “백씨의 작품이 상업적 측면에서도 회사가 기대하는 컨셉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실제 제품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냥 엄마가 10년 전에 쓰시던 액세서리가 그냥 놔두기에는 너무 아까워 만들어 봤어요. 엄마들이 집에서 그냥 놔두고 묵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 보려는 딸의 ‘욕심’일 뿐이죠.”

한편 그녀의 첫 작품인 접시 정가운데 부분은 하얀색 바탕에 한편 비어 있는 듯 하다. 무늬가 그릇 중심 자리가 아닌 왜 가장 자리에 걸쳐져 있을까? “음식도 하나의 예술 작품일텐데 서로 섞이면 방해가 될 것 같아서요.” 그녀는 “음식은 하얀 바탕 위에 놓여져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고 말한다.

평소 그릇을 좋아해 그릇 모으는 것이 취미라는 백씨의 음식 철학은 무척 자상하다. 음식이 그릇에 그려진 무늬를 가리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릇에 그려진 작품이 음식에 덮히는 것또한 원하지 않는다. “음식을 다 먹고 났을 때 특히 찌꺼기가 남겨져 있으면 작품도 버려지는 기분이잖아요.”

원래 순수회화미술가인 그녀는 기대 이상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도전이 웬지 낯설기만 하다. “큼지막한 종이에 커다란 붓을 가지고 기름 물감을 툭툭 쳐내는 작업만 하다가 가늘고 조그마한 붓을 생전 처음으로 써 봤어요.”

예원학교와 미국 파슨즈 디자인스쿨, 일본 상지대 등에서 수학하고 그간 개인전만 6번, 그룹전에도 10회 이상 출품한 그녀의 도전은 하지만 한계가 없어 보인다. 지난 해에는 재즈 가스 윤희정씨와 함께 ‘윤희정과 프렌즈’ 공연 무대에 서서 재즈 2곡도 시원하게 불러냈다. “예술에는 장르가 없는 것 같아요. 기회가 닿으면 앞으로 연극도 해보고 싶습니다.”

그녀의 작품과 접목된 ‘프라우나 티파니’는 올 봄 출시를 앞두고 개당 10만원 이상의 고가임에도 벌써부터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이어질 두 번째 작품은 리본을 형상화한 보다 화려한 문양이 될 전망이다.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세계 무대에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아요.”


글ㆍ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