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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순 5집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1997/킹레코드)
따뜻하고 강하고 빠르고… 변화무쌍한 보컬의 매력
희망·현실의 버거움 노래에 담아… 또 한명의 위대한 여성 뮤지션 탄생



2000년대 이전 만해도 국내에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존재는 천연기념물 급이었다.

최근 개체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주목할 만한 뮤지션은 여전히 극소수다. 포크 명곡 ‘불나무’로 유명한 방의경은 국내 최초로 1972년에 완벽한 창작 앨범을 발표한 전설적인 포크가수다.

그리고 독집앨범을 내진 못했지만 명곡 ‘세노야’, ‘나 돌아가리라’를 발표한 김광희도 있었다. 이들 이후 심수봉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로는 거의 유일하게 주목을 받으며 독야청청했다. 90년대에 들자 한영애, 이상은과 장필순이 비로소 일종의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다. 97년에 발표된 장필순의 5집은 95년에 발표한 이상은의 ‘공무도하가’에 필적할 명반이다.

지금은 한국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대표주자의 위상이지만 장필순의 데뷔시절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예대 재학 중 대학연합서클 ‘햇빛촌’에서 만난 김선희와 여성듀엣 ‘소리두울’을 결성한 그녀는 89년 솔로 데뷔 전까지 대부분 보컬그룹이나 프로젝트 음반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희미하게 알렸다.

하지만 솔로 데뷔이후 매력적인 허스키한 음색으로 노래한 ‘어느 날’, ‘여행’, ‘빨간 리본’등을 통해 노래 잘하는 가수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5집 발표 전까지 10여 년 동안 장필순에 대한 평가는 ‘노래 잘하는 여가수’ 혹은 탁월한 ‘코러스 전문 가수’ 정도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1집부터 작사 능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녀를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할 뮤지션 재목으로 기대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총 12곡의 수록곡 중 5곡의 수준급 노래를 창작한 5집은 장필순 음악인생에 있어 일종의 분기점이었다. 비록 폭넓은 대중적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앨범을 통해 그는 적어도 노래 잘하는 가수에서 모던 포크 록 여성 아티스트로 음악적 신분상승을 이뤄냈다.

장필순의 이 같은 변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조동진의 동생인 조동익이다. 이병우와 함께 남성듀오 ‘어떤 날’을 통해 80년대 중반 이후의 새로운 음악지평을 제시했던 그는 장필순 3집 이후의 음악적 궤적을 같이한 그녀의 음악스승이자 사랑하는 남편이기도 하다.

3집 수록곡 ‘도시의 하루’는 두 사람의 범상치 않을 미래를 예고한 신호탄 같았다. 조동익, 윤영배, 장필순의 삼각 창작 구도로 구성된 5집의 첫 곡 ‘첫사랑’은 속삭이듯 감정을 절제한 탁월한 보컬이 인상적이다.

음 밸런스가 높아 반복적으로 ‘웅웅’거리는 조동익의 베이스 소리가 조금은 거북스럽지만 연주보단 보컬에 무게중심을 둔 트랙이다.

타이틀곡은 맑고 서정적인 장필순 보컬의 원형질이 느껴지는 2번째 트랙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다.

서정적이고 짙은 감성이 배어나오는 명곡이지만 포크와 발라드의 경계에서 머물던 장필순의 대변신을 증명하는 트랙은 비트 강하고 빠른 리듬의 모던 록인 3번째 ‘스파이더맨’부터 시작된다.

이어 독특한 제목의 포크 록 'TV,돼지, 벌레'도 놀랍다. 이전의 그녀 노래 가사에서 볼 수 없던 ‘미친 자동차’란 표현이 등장할 만큼 그녀는 경쟁 지상주의에 상실되어가는 인간성을 차분하게 일깨운다.

이어 ‘풍선’에서는 감성적이고 고운 보컬의 장필순이 완전하게 망가진다. 그러나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불안한 음정은 가슴을 치는 메시지와 진정성을 획득 시키는 미덕을 발휘한다.

장필순은 달콤한 사랑노래가 아닌 삶의 진솔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한 것이다. 상큼한 분위기의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도 좋은 곡이다. ‘이곳에 오면’, ‘그래!’등 그녀가 창작한 5곡은 첫 창작 작업에 대한 미덥지 못한 편견을 깨트리는 뛰어난 작품들이다.

장필순은 자신의 5집에 대해 “희망이 담겨 있긴 하지만 현실의 버거움을 노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볍고 흥미위주로만 내닫는 지금의 대중음악계에서 장필순의 위상과 평단의 기대는 지대하다. 2002년 발표한 6집 ‘Soony6’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여성 뮤지션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또 하나의 명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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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8/04/09 15:26




글=최규성 대중문화 평론가 oopl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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