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화합 메시지'는 미국 진보 지식인의 '함께 사는 사회'와 코드가 일치

내가 “오바마” 이름 석 자를 처음 들은 것은 2006년 가을 무렵 나와 같이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는 수잔으로 부터이다.

당시 그녀는 캘리포니아지역 오씨덴틀 칼리지 (Occidental College)에서 파트타임 스텝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 학교를 2년 간 다닌 적이 있다는 오바마가 연설을 하러 온다며 무척 흥분해 했었다. 미 지식인층이 오바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하버드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최고 엘리트이어서, 즉 “가재는 게 편” “초록은 동색” 식의 논리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즉, 흑 백 혼혈이란 태생의 ‘한계’를 장점으로 바꾸어 “하나 됨” 과 “화합” (Unity 또는 Union)의 정치를 주장하는 그의 메시지는 미국 진보 지식인들의 관심사인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란 주제와 그 코드가 일치한다.

특히 9/11사건이후 세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적 논리로 보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 무력대응, “힘으로 밀어붙이기”식 현 정권의 외교정책에 불만을 가진 지식인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전공인 교육 분야만 해도 “다문화 교육”, “다문화 소통과 돌봄” 등등, 다름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 만들기’란 주제가 근래 들어 각광을 받고 있다. 따라서 검정 물 많이 먹은 지식인일수록 오바마를 선호한다는 것, 이유 있고 근거 있는 말이다.

■ 노사모와 비슷한 조직 미국에도 있다

“오바마 광”(Obamabnia), “오바마 중독자”(Obama addicts), “오바마 교도”(Obama Cult), “오바마 세대”(Generation Obama) 등, 회자되고 있는 신조어에서 엿볼 수 있듯이 오바마를 둘러싼 ‘집단 히스테리아’ 비슷한 일반 대중의 열광에는 냉철한 이성과 논리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특히 오바마에게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을 느끼는 미국 젊은이들이 많은데, 이 때문인지 이들의 이번 선거에 대한 관심은 역사상 그 유례가 드물 정도로 뜨겁다.

학교 도서실에서 공부는 안하고 인터넷으로 선거상황을 점검하다 내 눈에 들어 온 학생들도 적지 않고, 내 친구 베티만 해도 이번 투표가 머리털 나고 ‘처음’ 한 경선투표라 한다.

특히, 자신들을 “오바마 세대”(Generation Obama)라 자칭하며, 오바마 대통령 만들기를 도모하는 젊은이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미-전역에 걸쳐 지역사회 단위의 풀뿌리 선거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이고 있다.

■ 오바마의 인종정체성은 그의 연설 속에 있다

나 자신도 알게 모르게 오바마 광기(?)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었나보다. 오바마가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Rev. Jeremiah Wright)의 “저주받을 미국(God damn America)” 발언으로 미국 매스컴이 온통 벌집을 쑤신 듯이 시끄러울 때, 뭔가 가슴 한구석이 ‘쿵’하니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내가 오바마에 대해 아는 것이 뭐가 있나? 낭독상을 받을 정도로 화려하다는 그의 웅변술 말고는 별로 없다.

그나마 ‘변화’니 ‘통합’이니 외치는 TV 방영용 ‘조각’연설 밖엔 들어보지 못했고, 그에 대한 기사들을 지난 서너 달간 열심히 읽어는 왔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진짜 오바마’에 가까운 진실인지는 나도 모르고 아마 쓴 사람도 잘 모를 것이다.

선거권도 없을 뿐더러, 잠깐 머물다 갈 이 나라의 미래가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불안하고 걱정스러워지는 이 기분. 이제야 알 것 같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말"(Words, talk, Speeches)이 아니라 "행위"(Actions, Work, Solutions)라며 힐러리가 구구장창 외쳐오던 구호들은 다시 생각해보면 ‘그의 ‘말’ 말고 오바마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냐는 의심의 씨뿌리기 전략이었다.

학교 다니는 학생도 아니고, 자기 선거참모의 글 몇 문단을 가져다 내 말인 양 좀 써먹은 것을 가지고 정치적인 플레이져리즘(Political Plagiarism)이라며 공격의 날을 세우던 힐러리. 우리 같은 정치초단 보기엔 별것 아닌 일에 힘 빼는 듯 보이던, 정치10단 힐러리의 주장은 이유 있는 항의였다.

말뿐인 오바마가 그 말조차 자기 것이 아닌데, 진짜 오바마가 누군지 아느냐고 그녀는 묻고 싶었을 것이다. 오바마의 실체에 대해, 회의와 불안을 일으키려는 힐러리의 온갖 시도는 지금까지 거의 효과가 없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저주받을 미국”을 선포하는 목사를 무려 20년간이나 ‘영적 안내자’ 로 대해왔다는 오바마! 이 사람이 누구인지 당신은 아느냐는 질문에 요지부동 안 할 미국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게다가 옆 사람들 다 하는 성조기에 대한 경례를 혼자 하지 않고 뻣뻣이 서 있는 오바마 사진까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이 판국에 말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오바마는 “인종” 에 관한 연설을 통해 사태 수습에 나섰다 (3월18일 자). 그의 연설이 TV로 생중계 된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오바마 연설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오바마가 누구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사실, 오바마의 “인종정체성”(Racial Identity)은 내게 커다란 궁금증이었다.

케냐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오바마는 “흑인 피 한 방울만 섞여도 흑인(One Drop Rule)”이란 원칙에 따르면 흑인이지만, 막상 흑인들 눈에는 갈색인 오바마는 완전한 흑인이 아닐 수도 있다. 게다가, 아프리카 혈통의 오바마는 ‘흑인 미국인’을 규정하는 ‘미 노예제도의 피해자’란 집단기억을 ‘나의 유산’이라 주장하기는 무리가 있다.

또, 다른 인종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대부분이 주 양육자의 인종과 동일시 한다는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아버지 없이 백인 엄마 손에 자란 오바마의 인종정체성은 백인의 것이어야 할 것이고, 헌신과 사랑으로 자기를 길러 준 백인인 친 할머니가 길거리를 지나가는 흑인남자가 두려웠다는 고백으로 오바마를 움츠러들게 했었다는 일화는 오바마의 결코 단순치만은 않을 인종 정체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복잡다단한 그의 인종정체성에 대한 답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대체로 그렇다”고 해야겠다.

누구도 다루기 원치 않는, 그리고 본인도 원치 않았을, 인종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해야만 할 절박한 필요를 느낀 만큼, 오바마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자신이 충분히 흑인, 즉 차별받는 소외집단의 흑인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바마가 범상치 않은 점은 자신을 차별받는 흑인이란 한 인종집단에 국한시키지 않고, 흑과 백의 이분법적인 카테고리를 초월한 ‘진정한 하나 됨’의 존재로 인식하며, 이 단일 인종정체성을 근거로 인종화합의 전도사로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내 주변 흑인 친구들이 걱정 하는 것은 오바마가 ‘얼마만큼’ 흑인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바마의 생명, 즉 너무 리얼하게 느껴지는 암살 위험이다. 그의 안전을 걱정하는 이 흑인 친구들의 눈에 오바마는 ‘흑인’ 후보 맞다!

■ 나종미 약력

나종미 씨는 1998 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프린스톤 신학교 기독교 교육석사, 유니온 신학교 신학석사를 마치고 현재 클레어 몬트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문화전문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