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한인학교에선 재미교포 2~3세들의 '조국사랑' 무럭무럭

2세들의 한국어 능력은 가정에서 한국어에 얼마나 노출되어 왔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이라도 한국어를 쓰는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렵지 않은 생활 한국어 정도는 대강 알아듣는다.

어떤 고등학생 여자아이는 한국어 밖에 할 줄 모르는 조부모 손에서 자라고 영어로 얘기할 다른 형제자매도 없는 외딸이지만 거의 완벽한 이중 언어를 구사하였는데, 기특하게도 작년 SAT II 한국어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한다.

어떤 한국 아줌마가 정지선 앞에서 기다리던 중 뒤에서 달려온 차와 추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미국에서 생활한 지 십오 년이 됐지만 간단한 생활영어조차 하지 못하고 휴대폰까지 두고 와서 전화화상으로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유창하게 영어를 잘 하는 멕시칸 가해자 혼자 경찰에게 사고 상황을 설명하게 한 뒤 별 생각 없이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며칠 후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둔갑해 신고가 된 것을 알고 앓아누웠다. 교포아줌마들 전용 인터넷 사이트에 아이 학교 숙제를 이해하지 못해 번역을 좀 해달라는 글을 올린 어느 한국 엄마의 사연을 읽고 안타까워 한 적이 있었는데 이와는 비교도 안 되게 더 속상한 이야기다.

이쯤 되면 “미국 거지가 부럽다” 며 할 수만 있다면 경제적으로는 안정되었지만 영어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영어하는 미국거지와 바꾸고 싶다는 이민 십오 년차 친구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많을 것이다.

■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영어

물과 말이 익숙하지 않은 남의 나라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영어로 인한 열등감은 한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사실은 나도 이런 결핍감을 뼛속 깊이 느끼며 사는 사람 중 하나다.

언젠가 친구 비키한테 미국 정부는 나에게 장애자용 주차증을 발급해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리둥절해 하는 그녀에게 내가 “언어장애” (Language Disability)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내 웃음 뒤에 숨긴 짠~한 서글픔을 비키는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언어(영어) 하나 더하는 것은 ‘잉여’지 ‘결핍’이 아니라고, 그러니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나 자신을 격려하지만, 혀에 기름이라도 친 듯 굴러가는 미국 동료들의 막힘없는 영어를 듣고 있으면 왠지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기분을 피할 수가 없다. 특히 겉모습은 나와 별반 차이 없는 한인 교포 2세들의 흠 잡을 데 없는 영어 실력은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어서 정작 이들이 한국말을 잘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30대 후반의 교포 2세 “샘” 은 한국말을 아예 하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는 인종차별이 심하던 5~60년 대, 당시 스물 두 살의 나이로 유학을 와서 악센트조차 없는 완벽한 영어구사를 하겠다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한 결과 미국 어느 대학의 교수로 발탁돼 오랫동안 일하셨다고 한다.

영어로 인해 자신이 겪은 고통과 불이익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아예 가르치지 않았다는 샘의 아버지는 지금에서야 자신의 결정을 무척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초창기 이민자 자녀들은 꽤 많은 편이다. 슈퍼마켓, 세탁소 등에서 일하며, 험하고 고된 일에 파김치가 된 부모들이 아이들과 대화 나눌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한국어를 가르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들었다. 이처럼 어쩌다 ‘못’ 가르친 것과, 샘의 아버지의 경우처럼 의도적으로 ‘안’ 가르친 것은 그 동기 면에서 많이 다르다.

어찌 한국인이 한국말을 하지 못하냐는, 그리고 자식에게 모국어도 가르치지 않은 너희 부모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는 다른 한국인들의 비난에 깊이 상처를 받은 샘은 한국의 “한”자 들어가는 것도 싫어하게 되었고 그동안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 샘으로 살려고 노력해왔다고 한다.

교포 2세들이 다 한국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쓰기나 읽기 능력은 떨어지지만, 많은 2세들이 어려운 한자말이 들어가지 않은 평범한 수준의 생활국어 정도는 할 줄 안다.

프린스턴에서 공부 할 때 내 룸메이트였던 교포2세 셜리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셜리는 수업시간에 노트 여백에 “아이고 졸여라(졸려라)”라고 한국어를 잘못 적어 내 배꼽을 빠지게 할 정도로 깜찍했다.

교포 2세 덕분에 영어 좀 배워보자고 전혀 모르는 사람과 같이 사는 모험을 감수했던 나는 오히려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며 그녀가 한국어만 쓰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뉴욕 어디선가 학교선생으로 일한다는 그녀의 한국어 능력은 얼마나 많이 늘었을까?

사실 2세들의 한국어 능력은 가정에서 한국말에 얼마나 노출되어 왔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이라도 한국어를 쓰는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렵지 않은 생활 한국어 정도는 대강 알아듣는다. 어떤 고등학생 여자아이는 한국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조부모 손에서 자라고 영어로 얘기할 다른 형제자매도 없는 외딸이지만 거의 완벽한 이중 언어를 구사하였는데, 기특하게도 작년 SAT II 한국어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한다.

교포 3세대의 탄생과 함께,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뿌리를 더 깊이 내려가는 재미한인들 사이에는 지금 한국어를 포함한 ‘한국 배우기’ 바람이 불고 있다.

■ 사고 형성과 동시에 내면을 반영

미국의 한국 바람,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득이 동기가 된 면도 없지 않다. 방금 언급한 만점 여학생 경우처럼, SAT II 외국어 시험도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독일어나 스페인어보다는 이미 기본기가 있는 한국어로 치르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군대에 가도 이중 언어 가능자는 남보다 월급도 많이 받는다.

한국의 영어몰입 교육안 발표 이후 한국학교에 한국어를 배우러 오겠다는 성인 교포 2세들의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부모님의 고향인 한국에 가서 자신의 ‘뿌리’도 배우면서 ‘돈’까지 버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이곳 ‘동부 한국학교’의 교장선생은 동부학교는 ‘한글학교’ 가 아니라 ‘한국학교’ 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이유인즉 한국학교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곳이라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 말에 백번 공감한다. 한국학교에서 설날에 윷놀이 가르치고, 삼일절 광복절에 애국가 가르쳐서가 아니라, 언어 자체가 바로 문화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존대어를 쓰는 우리나라의 문화와 언어사용에 있어 폴리티컬 코렉트니스 (Political correctness)를 외치며 소수의 억압받는 자들에 대해 배려하는 미국문화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와 가치를 보여준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동시에 우리 내면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어는 민족의 얼이요 정신이다.

뿌리 없는 부초처럼 방황하던 샘이 근처 대학에서 제공하는 한국 관련 수업을 두 개나 듣고, 나아가 한국이름까지 지어 가졌다. 함께 기뻐할 일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한국바람, 잠시 불다 사라지는 바람이 아니라, 한국열풍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똑똑 떨어지면서 막힘없이 넘어가는 나의 한국어를 들으며 부러워하는 교포 2세들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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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