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온갖 정신병리학적 문제를 의학·철학의 내시경으로 진단'빅터 프랭클의 심리의 발견' 빅터 프랭클 지음/ 강윤영 옮김/ 이시형 감수/ 10,000원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의학분야만큼 철학과 밀접한 부문도 드물 것이다.

<빅터 프랭클의 심리의 발견(이하 심리의 발견)>은 현대의 갖가지 정신병리학적인 문제들을 인간의 내면에 대한 내시경으로 진단한 책이다. 의학이라는 입구로 들어가 심리와 철학이라는 출구로 나온다. 의학과 철학이 본질적으로 같은 통로로 드나듦을 본다.

<심리의 발견>은 의학박사이자 철학박사인 저자 빅터 프랭클의 대중강연내용을 엮어 정리한 것이다. 불안신경증, 불면증, 강박증, 전신분열증 등 의학적인 질환은 물론, 숙명론과 사랑, 자비와 살인, 영혼 등 대중적인 화두도 폭넓게 논한다.

영역은 넓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초반부터 또렷이 집중되어 드러난다.

바로 ‘삶의 의미와 목적찾기’에 관한 것이다. 제반 신경증은 물론, 쾌락주의로 치닫는 현대인들의 군상 또한 그 인과의 원리를 삶의 의미와 목적 상실이라는 점에서 핀셋으로 집어낸다. 쾌락주의에의 몰입이란 사실상 ‘성적 불만족’이 아닌 ‘존재적 불만족’에서 파생된 문제로 저자는 지적한다.

자살 문제 역시 흔히 생각하듯 외부적인 특정 문제로 인한 충격이나 절망 자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더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다’는 같은 결론에 도달하면서 나오는 비극으로 풀이한다. 니체가 말한대로 ‘살아 갈 이유가 있는 사람은 그 어떤 현실도 견뎌낸다’는 얘기와도 맞닿는 답이다.

괴테는 고령의 나이에도 7년 동안 <파우스트>2부 집필에 매달렸다. 1832년 1월 마침내 혼신을 다 해 쓴 마지막 원고를 묶고 인장을 찍었다. 그리고 두달 뒤 사망했다.

빅터 프랭클은 괴테에게 있어서의 <파우스트>2부란 그에게 ‘더 살아있어야 할 이유’로서 그의 죽음을 유예시킨 것이라 해석한다. 동일한 원리가 동물원안에서도 적용된다.

묘기 등 특정한 임무를 받고 훈련받는 서커스 동물이 같은 동물원내에서도 단순 사육되는, ‘할 일 없는’ 동족들보다 평균 수명이 더 길다는 점이다. 물론 목적도 도를 지나치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관리자병’이라는 것이 있다. 극심한 과로로 생명의 위기까지 처한 한 워커홀릭 환자가 병원에 입원한다.

개인 비행기를 갖고 있을만큼 경제적으로 풍요하면서도 일과 수입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한참의 정신과 검진 결과 그의 과로 속에 숨은 진짜 이유가 밝혀졌다.

환자는 ‘이젠 그냥 비행기가 아니라 제트기를 갖고 싶다’고 했다. 이 순간에도 현대인들을 끝없이 다그쳐대는 성공과 부 지상주의의 말로를 보는 듯하여 쓴 웃음을 짓게하는 대목이다.

<심리의 발견>은 ‘자기 안의 성찰과 관(觀)’을 강조하는 동양철학과 자주 오버랩된다. 저자 또한 말한다. ‘스스로를 경멸하거나 애지중지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완전히 잊는 것, 자신만이 부여받은 구체적인 과업에 내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라고.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여러 임상경험을 포함, 의학 및 심리학, 철학 관련 자료를 다양하게 활용해 일반인들이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 등 기존 의학계의 굳은 학설에 대한 이견도 다소 자주 제기된다. 한편으로는 ‘정신의학에 대한 해묵은 오해와 진실’을 다룬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저자의 이론을 모든 환자나 사례에 대해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주로 대증치료, 물리적 치료에 집중해 온 서구 의학계의 풍토를 감안해보면 사뭇 신선한 지적이다. 특히 집단적 정신적 공황을 부추기는 이 철학 부재의 시대에 우리의 시선을 바깥이 아닌 자신의 내면으로 되돌려놓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얻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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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