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불안 절제된 사운드로 환상 묘사음반 발표 3년만에 한국대중음반 톱 100에 거침없이 등극

대중음악의 미덕은 시대를 반영하는 당대인들의 삶과 정서적 흔적을 담아냄에 있다. 남성 2인조 밴드 ‘못’의 음악은 바쁘고 번잡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의 불안한 심정을 절제된 감정과 다양한 사운드의 결합을 통해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가 힘들고 지친 것을 알고 있다고 다독여 준다. 이건 분명 슬픈 감성의 탐미가 아니라 경쟁사회에 지친 우리 영혼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예술적 카타르시스다.

슬퍼서 행복한 것인가 행복해서 슬픈 것인가? 놀랍도록 우울해서 아름다운 독특한 MOT의 음악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들의 음악도 헷갈리긴 마찬가지다. 록과 재즈, 포크에다 세기말 대중음악인 트립합까지 뒤섞여 장르규정이 힘든 어법이다. 언뜻 난해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강렬한 사운드와 서정적 멜로디가 공존하는 낯설지만 결코 서먹하지 않은 음악이다.

연세대 전파공학과 출신 이언(보컬)과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 Z.EE(기타. 본명 이정현)는 2001년 인터넷 구인광고를 통해 만나 중대 결단을 내렸다.

10년의 음악경력을 가졌던 이언은 탄탄한 직장을 버렸고 7년의 밴드 공력을 지녔던 Z.EE는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음악을 인생의 중심에 두기 위해 사회적 가치관을 버리고 밴드 결성을 단행했다. 그렇게 탄생한 데뷔작 는 음악완성도로 보아 단연 2004년 베스트 앨범이었다.

당시 평단과 음악 애호가들의 반응은 '데뷔작 같지 않은 데뷔작', ‘어디서 툭 튀어나온 아이들인가’라는 놀라운 반응 일색이었다. 2005년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은 그렇다 쳐도 발표 3년 만에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순위 59위 등극한 결과는 진정 경악스러웠다.

중독성 강한 향기를 뿜어대는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우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에 그만 취해버렸다. 서정적인 가사와 특유의 음울한 사운드는 신인밴드 특유의 생동감과 파워보단 움직임이 없는 고요함이 엿보였다. 뭔가 심상치 않은 사연을 담은 신비한 연못의 이미지랄까. 실제로 MOT라는 밴드 이름은 연못의 ‘못(沚)’에서 가져왔다. 데뷔 앨범 제목 ‘Non linear’는 자신들의 음악을 규정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비선형’이란 뜻이다. 음반 속지에 명기된 영어와 일본어 가사가 눈길을 끈다. 해외를 겨냥한 포석이다.

숨겨진 연주 트랙을 포함 총 13곡의 수록곡 중 타이틀곡은 첫 트랙 ‘COLD BLOOD'. CD를 걸면 흘러나오는 차가운 기타연주와 묘한 콧소리가 빚어내는 기괴한 분위기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곧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싶은 중독성을 발휘한다. 모든 곡이 흥미롭지만 특히 ‘날개’가 좋았다. 뮤지컬 헤드윅의 원작자 존 카메론 미첼이 내한공연 때 한국어로 불러 더욱 유명해진 곡이다. 그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노래가 머리를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극찬했다.

단출한 기타선율에 이언의 꽉 찬 보컬이 텅 빈 공간을 가득 메우는 매력이 휴식을 안겨주는 트랙이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의 '카페인'과 '자랑' 그리고 자신의 음악어법으로 재해석한 루이 암스트롱의 명곡 'What A Wonderful World', ‘러브 송’도 놓쳐서는 안 될 트랙들이다.

이들은 한 곡의 완성을 위해 수도 없이 수정작업을 불사하는 완벽스타일이다. 왜 이들의 음악에 진정성이 느껴지는지에 대한 이유다.

작사 작곡 연주 편곡 프로듀싱까지 완벽한 송라이팅 능력을 지닌 이들의 향후 음악여정이 걱정스럽다. 주류와 소위 인디음악으로 양분된 국내 대중음악시장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그러나 수익을 내는 대중취향의 음악보다 수익으로 이어지는 저변구축을 위한 환경조성에 일조하는 음악을 꿈꾸는 이들의 기특함에 한없는 신뢰가 느껴진다.

다락방에 몰래 숨겨놓고 혼자 즐기고 싶은 휴식 같은 ‘못’의 데뷔앨범. 슬픔의 정서를 통해 진정성과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노래들 때문에 앞으로 일반 대중가요를 듣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불행일까 행복일까?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