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영국 주재 프랑스대사와 친구 라보르의 주교를 통해 유럽 권력자들의 관심사 탐구

한스 홀바인, <대사들(The Ambassadors)>
207x209cm, 1533,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행정안전부가 국립현대미술관을 민영화한다는 정책안을 내놓았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조직개편의 일환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극장, KTV 등 현재의 책임운영기관을 법인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안의 배경에는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새 정부의 정치적 의지가 담겨있다.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싸고 제기된 조직과 운영의 문제점을 고려할 때 혁신방안이 나와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 개혁의 방향이 국립미술관의 민영화라는 보도를 접하고는 말문이 막힐 뿐이다.

민영화란 국가기관의 민간 이양을 의미하고 운영과 재정의 독립을 궁극적 목표로 삼아 추진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민영화 체제에서 미술관은 불가피하게 수익사업에 전력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생겨난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에서 규정하듯 미술관의 본성은 비영리적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 정책안은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구의 윤리강령을 부정하라는 것이며 세계화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국가 통치술의 위기를 내비춘다는 점에서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예술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를 지녀왔다. 플라톤은 예술을 최고의 정치 기술로 규정했으며 예술을 행해야할 최상의 인물을 정치인으로 뽑았다. 이러한 사관은 오늘까지 서방국가의 국가 경영을 위한 철학이 되어왔다. 예술이 통치 권력을 강화시키는 국가적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루이 알튀세르의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한스 홀바인이 1533년에 제작한 유명한 그림 <대사들>은 16세기 유럽 통치 집단의 관심사를 보여준다. 영국 주재 프랑스 대사와 그의 친구인 라보르의 주교를 그린 이 그림 속에는 천구의, 해시계, 사분의, 토르카툼(태양광선 각도 측정기) 등이 배치되어 있다.

한편 테이블의 아래에는 지구본과 수학책, 찬송가책, 그리고 다양한 악기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사물들 앞의 인물들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진출한 이후 천문학과 항해술을 근간으로 펼쳐지는 과학과 예술에 대한 정책의지를 표상하고 있다.

이 그림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하단부에 그려진 비행접시 같은 모양의 이상한 이미지가 그것이다. 그것은 왜상기법(anamorphosis)으로 그려진 해골이다. 이는 사물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그리는 기법으로서 치밀한 수학적 계산 속에 완성된다. 이 기법으로 그려진 물체는 정면이 아닌 특정한 각도의 지점에서 정상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그림의 오른쪽 상단에서 왼쪽하단으로 내려다보면 해골 이미지가 선명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해골은 현생의 모든 것들은 순간에 사라져 버릴 것들이며 언젠가는 맞이할 죽음을 기억하라는 “모멘토 모리”의 교훈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은 과학과 이성의 덧없음, 아니면 명예와 권력욕으로 파문을 일으키는 통치자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문화예술의 시대로 천명하고 있는 21세기에서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은 많다. 그중 국민을 위한 문화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고의 통치기술을 예술의 이름으로 실천하는 정치인들의 실험실이어야 하며 우리는 정부가 시장경제의 틀 밖에서 국립미술관의 개혁방안을 내놓기를 바란다.

■ 김영호 약력

중앙대와 동대학원 졸업. 파리1대학(팡테옹-소르본느) 박사(미술사학). 현대미술학회 회장.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회원. 현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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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다보면 해골이미지가 나타난다.

김영호 objetkim@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