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세프 사진전

자꾸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아직 사진작가도 아니었던 때. 남의 땅이 돼버린 엄연한 자신의 조국을 걸어가는 이들의 뒷모습에 마음 처연했다고 했다.

“ 그렇게 처음 티벳을 만나면서 내린 제 인생의 답이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되자는 거였어요. 다큐멘터리 사진로서도 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거라는 믿음으로요 ”

2008 유니세프 자선전의 사진작가 강제욱(32)은 굳이 어려운 길만 골라서 다닌다. 감성은 여리지만, 의식은 단단한 청년작가. 이번에도 지난 12년간 세계의 오지 40여개국을 돌며 촬영해 온 수만점의 사진중 일부를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가 오래전부터 진행해 온 10년 환경프로젝트 중 일부다.

사회와 현실의식이 싹 튼 것은 서울대 재학시 총학생회 부회장이 되면서부터였다. 마이크 울렁증이 있는 그는 소리없이 동료들의 활동내용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순수미술을 공부한 운동권 출신. 그러다 96년부터 아버지가 쓰시던 낡은 수동카메라를 들고 직접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졸업후엔 당시 정보통신부에서 선발한 국제봉사단원이 되어 카자흐스탄, 파라과이 등에 파견돼 몇 년씩 ‘가난하지만 행복한’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이 겹쳐진 뒤론 그에게 세상이 안방처럼 더 비좁아졌다. 워낙 출입국 횟수가 많아 준 주거불명자 수준. 6주동안 비행기를 13번씩 탈만큼 살인적인 스케줄을 진행하며 마치 옆집을 드나들 듯 세계를 누빈다.

2002년은 특히 그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전성기를 터뜨렸다. 모 시사주간지 기고를 비롯해 단행본 발행과 사진전문지 기고, 국제전시회 등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농지와 아이들
가뭄으로 메마른 에티오피아의 농지에서 아이들이 비와 새싹을 기다리며 서있다.
(위)물과 아이-3
에티오피아의 한 우물가에서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물을 건네받고 있다.
(아래·왼)물과 아이-1
외국인에 대한 경계도 없이 물장구치며 마냥 즐거워하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어린이(아래·오른).

발해 시리즈 취재때에는 삼엄한 경비를 피해 몰래 촬영하다 공안들에게 들켜 즉석의 카메라 압수, 연행, 조서쓰기, 구류, 벌금 등 호된 곤욕을 치렀다. 출입 허가 자체부터가 난관이었던 티벳 잠입때의 기억은 더욱 잊히지 않는다. 배낭은 빈 쌀부대에 넣고, 근처의 허름한 옷가게에서도 가장 허름한 옷을 골라 사 입은 뒤 얼굴에도 흙 자국을 묻히는 등 거의 봉두난발의 변장을 했다. 머리와 수염을 기르게 된 것도 그때를 계기로 이어진 습관이다.

“ 간신히 트럭을 얻어타고 그 뒤의 화물싣는 칸에 쭈그려앉아가는데 비포장 도로를 달릴때면 짐짝처럼 온 사방으로 나뒹굴어 온몸이 멍에다 생채기 투성이었어요. 한겨울 추위에 온 몸이 꽁꽁 언 채로요. 먹을 것도 잠잘 곳도 없는 곳에서 노숙하기도 하고, 20킬로그램이 넘는 장비를 들고 해발 몇천미터의 고지를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었어요. 친구들이 “전쟁터에 가도 너만큼은 고생 안 한다”고하더군요(웃음)”

이번 전시회는 강씨 자신에게도 특별하다. 기증작품 40여점. 그간 적지않은 개인전을 나라안팎에서 열어왔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그로서도 처음이다. 처음 티벳땅, 티벳인들의 슬픈 뒷모습을 보며 세상과 약속했던 자신의 첫 발자국이다.

“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존중돼야 할 인간의 숭고한 존엄성을 보여주고 싶어요. 사실상 제 평생의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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