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선 장애아동 개개인 특성에 맞게 '맞춤교육' 실시정상인과 더불어 사는 법 배워

“엘자(가명)”라는 이십대 초반의 미국 여학생과 수업을 함께 들은 적이 있다. 엘자는 바퀴 두 개 달린 보행기를 의지하고도 온 몸을 사정없이 뒤틀면서 걷는 중증 장애인이다.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인상 깊었던 그녀! 그녀가 우리 반에서, 아니 학교 전체를 통틀어서 유일한 장애인이어서가 아니라, 중증 장애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당당하던 삶의 태도 때문이었다.

말 한마디 하려면, 첫 소리를 끌어올리기 위해 “ㄴㄴㄴㄴ... 나는”하는 식으로, 짧으면 수초에서 길게는 수십 초 동안 안면근육을 뒤틀려가며 힘들게 말을 하면서도(물론 듣는 사람들은 안타까움에 마음을 졸이지만) 손들고 발표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던 그녀.

언어장애가 심한 그녀가 당시 대여섯 명 밖에 안 되던 우리학교 채플(학교예배) 합창단 창단 멤버 중 하나였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다른 단원들이 “내 목소리에 너무 의지 하는 것 같다” 며 내놓고 불평(?)을 하고 다녔다는 말을 듣고 더욱 감탄한 적이 있다.

당당함에 있어서 엘자 못지않을 케빈(Kevin Sites)이라는 미국 남학생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하반신이 아예 없이 태어났다는 케빈은 몸통을 보호하기 위해 가죽으로 만든 밥공기 모양의 “몸통신발”을 신고(?) 등산, 암벽타기, 스키 등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는 스키대회에 출전하여 입상한 상금으로 유럽과 아시아 15개국을 단신으로 여행하며, 무려 32,000개의 인물사진을 찍어 전시회를 열었다.

그가 찍은 사진 중 일부를 언 라인으로 보았는데, 스케이트보드에 올라타 ‘굴러다니면서’ 밑에서 올려다보며 찍은 것도 신기했지만, 인종도 성별도 나이도 다양한 사진 속 주인공들 모두 위로 반쪽 밖에 없는 케빈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중’ 한 컷 찍혔다는 사실이다.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늘 다른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는커녕,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며 거리낌 없이 원색적인 감정 표현을 할 기회를 주기위해 일부러 시선을 옮겨 딴청까지 부리는 그의 여유로움 덕에 세상에 나오게 된 사진들. 그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구경꺼리로 만들어버린 인생 역전의 역설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 미국의 통합적인 장애인 정책

엘자나 케빈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타고난 성품이나 부모의 교육방식 등 ‘개인적인’ 장애극복 성공사례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장애인을 ‘평등한’ 한 사회의 일원으로 품으려고 노력한 미국사회 전반의 결실이라고 본다. 미국 사회에서 장애인도 마땅한 대우를 받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흔한 예는, 어디를 가든 항상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이다. 주차할 자리가 없어 건물 주위를 돌면서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열 개 넘게 비어있는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을 볼 때는 ‘역 차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급한 김에 장애인 전용 공간에 주차 했다가는 벌금도 장난이 아니지만, 장애인의 자리를 훔친 ‘파렴치범’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영화배우 줄리아 로버츠는 장애인 전용 공간에 주차하다가 현장에서 걸려 공개사과까지 했었다.

주차공간 이외에도, 널찍한 장애인 전용 화장실, 계단과 각이 없는 휠체어 전용 보도는, 장애인도 제 역할을 하는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 미국의 ‘통합적인’ 장애인 정책을 대변한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장애인 정책은 이런 통합의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는데 정신박약, 뇌성마비, 자폐증, 간질 등과 같은 발달장애 관련 질병을 가진 사람들은 진단이 나온 바로 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캘리포니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21개의 지역센타를 통해 장애에 관련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주법으로(Lanterman Developmental Disabilities Act, 1977) 보장하고 있다.

이 법의 기본정신은 장애인이 본인의 의지에 반하여 ‘분리’ ‘수용’ 되거나 또는 제한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이 속한 지역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고’ ‘독립된’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운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왼) 텅 비어 있는 장애인 전용 주차 공간(오른)

■ '맞춤형' 교육과정을 통한 교육

통합을 추구하는 미국의 장애인 정책에 따르면, 장애아들도 장애 정도의 구별 없이 일반학교에 다닐 수 있다. ‘개인화된 교육 프로그램’(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이후 IEP)이라는 일종의 ‘맞춤형’ 교육과정을 통해서 일반학교 교육, 특수학교 교육, 또는 이 둘의 혼합형이랄 수 있는 일반학교 내에서의 특수반 교육 등 개인별로 다양한 장애아 교육을 디자인하고 있다.

즉, 학부모, 교장, 일반교육 교사, 특수교육 교사, 심리 치료사 등이, 일 년에 한 번씩 만나 특정 장애아의 장애와 능력 정도에 따른 교육적, 발달적, 기능적 ‘필요’를 평가한 후, 장애아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단순히 교과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장애아의 원활한 일반사회 통합이란 교육 목적에 걸맞게 IEP를 통한 지원도 다양한데, 예를 들면 언어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는 언어 치료사를 몸이 불편한 아이에겐 물리 치료사 또는 작업 치료사(Occupational therapist, 근육 운동을 통한 치료 담당)를 붙여주거나, 또는 장애아 전용 특수학교를 다니는 아이에게 일반아이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데이케어’(Day Care) 프로그램을 추가 해주는 등등의 일이다.

물론 IEP를 거쳐 제공되는 서비스들은 모두 무료다. 정신지체 딸을 가진 한국의 어느 아버지는 자기 딸이 길을 잃게 되었을 때 장애인 ‘수용소’에 끌려갈까 염려되어, 아이 몸에 이름과 전화번호 등을 문신으로 새겨 넣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아버지 말이 40분에 3만 8천 원 하는 언어교정 치료비가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은 길을 잃어도 자기 신원을 표현할 길이 없다던데, 이런 아이들 부모들이 이 글을 읽으면 당장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 온다하지 않을까?

■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

한 번은 리프트 달린 소형버스에서 휠체어를 타고 하차하는 할머니를 보고 쫓아가서 여쭤봤더니 전화 한 통화면 이 버스가 바로 집 앞까지 와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고 한다.

거의 콜택시 수준의 이런 서비스 한 번에 단돈 3달러! 휠체어를 타고 다른 일반 노인들과 어울려 운동을 하는 그 할머니의 ‘환한’ 얼굴을 보니 덩달아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애인을 장애가 덜한 또는 장애 없는 사람처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마음을 변화시키자는 것이 아닐까?

■ 나종미 약력

나종미 씨는 1998 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프린스톤 신학교 기독교 교육석사, 유니온 신학교 신학석사를 마치고 현재 클레어 몬트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문화전문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