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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필수적이고 가장 위험한 학문"

[신간] 미술품 감정은 한 시대의 문화와 학문적 가치 포괄
국내 최초의 미술품 감정 전문서 나와 감정은 미술사 작가론 재료학 등 연계
우리 감정 분야 기초연구, 전문가 부실… 감정(학) 정착 위한 시스템 갖춰야
감정은 미술시장의 출발이자 귀결점
  • 최병식 교수
"미술품 감정은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신장시키고 그 나라의 문화적 국격도 높일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분야인데 우리는 너무 빈약합니다. 연구도 시스템도, 미술시장까지 허약하지요."

최근 '미술품감정학'(동문선) 책을 펴낸 최병식(60) 경희대 교수는 미술에 있어 '감정(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술품 감정은 미술품의 진위와 가치, 가격을 판단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술사는 물론, 문화재학, 작가론, 재료학 등 종합적인 이해가 요구된다. 또한 미술품에 대한 진위부터 가려져야 전시나 거래도 가능하다.

작가의 작품 가치에 따라 그 나라에 대한 문화적 평가가 병행되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중국 미술품은 중국 문화에 대한 평가와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데 그 기반에는 미술품 감정의 숨은 역할이 있다. 중국 내 미술품에 대한 감정 전문가, 연구소, 감정 관련 책 등은 세계적 수준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현실은 척박하다. 우선 미술품 감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전문가가 있어도 개인감정이 아닌 집단감정만 인정하는 현실, 연구소, 연구서적의 부재 등미술의 기초가 허약하니 세계적 작가가 나오기 어렵고, 세계 미술시장에서도 변방에 가깝다.

이는 미술품 감정이 지난한 종합학문이며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것과도 관련있다. 그래서 최 교수는 "가장 필수적이고도 가장 위험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미술품 감정은 난해하면서도 위험한 영역이에요. 그래서 자주 위작시비가 벌어지지요. 한국은 감정의 근거가 되는 자료도 부족하고 학문적으로도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이런 환경에서 감정(鑑定)을 잘못하면 감정(感情) 상하기 쉽지요."

이는 최 교수가 '미술품감정학'을 펴낸 이유이기도 하다. 책은 최 교수가 통시적인 연구를 해온 미술비평, 경영, 뮤지엄, 정책 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고미술, 근현대미술품에 대한 감정 표준, 원칙확립을 염두에 두고 기술했다. 감정의 기초적인 내용부터 국내외 감정시스템을 학문적으로 조목조목 분석하고, 세계적 위작 사례를 도판과 함께 흥미롭게 다루었다. 국내 미술품 감정이 도입된 지 30여년이 됐지만 관련 전문서적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저자는 국내는 물론, 외국의 감정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중국 미국 등을 직접 찾아가 책의 충실함을 더하였다. 출간 과정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저작권 문제가 걸린 도판을 인용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작품 진위 논란으로 화제가 됐던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대표적 사례다.

"작품은 감정 결과 진품으로 결론 났지만 천 화백 측이 위작이라고 주장하며 절대 도판을 실으면 안 된다고 해서 부득이 도판을 사용하지 못했어요."

책이 담고 있는 세계적 작품의 위작 논란은 미술품 감정의 학문적, 현실적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한다. 1990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592억원에 낙찰된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과 같은 제목의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품 사이에 벌어진 진위 논란은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또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스위스 모나리자재단 소장품인 작가 미상의 '아일워스 모나리자',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소장품인 작가 미상의 '모나리자'를 비교하며 미술품 감정이 역사학, 재료학, 법의학까지 종합학문이란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책은 해외 사례를 통해 국내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취약한 미술품 감정 분야는 미술 제반 분야의 기초가 튼실하지 못한 데 기인한다. 그래서 최 교수는 미술품 감정은 작품의 진위 판단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작품, 작가, 시대, 관련 인물 등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가 양성될 수 있는 연구환경, 학술기반, 재정지원, 과학감정 등 시스템 정착이 시급하다는 게 최 교수의 제언이다.

그는 "미술시장의 출발도 감정이고, 귀결점도 감정"이라며 감정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미술품, 나아가 문화재와 한 나라의 문화를 고양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감정 전문가들도 작품의 진위에 대해선 말을 아껴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 비전문가들이 너무 쉽게 입장을 밝혀 '문화적 손실'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국내 미술품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45억2000만원)에 낙찰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 진위 논란을 언급하면서 "가짜를 만들어내는 것도 나쁘지만 진짜를 가짜로 만드는 것은 더 나쁘다"며 "무첵임한 폭로성 위작시비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술품 감정의 파급력은 한 작품의 생명은 물론 한 시대의 문화적 가치와 학문적 가치를 동시에 포괄하게 된다.

저자는 고미술품에서 당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거래량의 확대와 글로벌마케팅의 진출, 정당한 평가를 통한 기부 문화 조성, 자산가치의 확보 등을 위해 미술품 감정이 시급히 정립되야 할 분야라고 강조한다. <미술품감정학>, 최병식 지음, 동문선 펴냄, 438쪽, 4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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