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유하는 자아의 거울

현재의 ‘나’는 누구에게나 과거의 시간이 충적된 모습이다. 그 무수한 시간 사이사이에는 각기 다른 삶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그 삶의 시간은 누구에게는 환희, 또는 추억으로 기억되지만, 누군가에겐 지워버리고 싶은 상처로 남아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게의 삶은 다양한 시간들로 연결돼 있고, 싫든 좋든,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든 ‘기억’을 통해 되살아나곤 한다. 그 ‘기억’은 스스로에 머물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타자화되고 대화의 매개로 범주를 넓히기도 한다.

권경엽 작가는 그러한 ‘기억’의 의미를 끈질기게 천착하며 타자와 대화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기억’의 공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서울 부암동 자하미술관에서 9월 5∼28일 열리는 권경엽의 개인전 ‘monologue’전은 ‘기억’이 전하는 여러 의미를 작가 특유의 세계로 초대해 대화를 나누게 한다.

작가는 붕대, 눈물 등의 상징과 함께 탈색된 듯한 색을 잃은 아름다운 인물을 통해 내면의 상처와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해오고 있다.

작가는 초기 자신의 트라우마를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데서 점차 기억으로 반추하며, 나아가 성찰로 치유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이 함의하는 트라우마는 작가 개인의 우울한 기억의 고백이지만 그것은 누구나에게 남을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줄곧 트라우마의 기억을 붕대로 가린다. 때론 눈물로 아픈 기억을 전달한다. 그 트라우마는 신체 속에 기억으로 저장된, 존재론적 트라우마다. 2009년 ‘Space of Memory(기억의 공간)’전이나 2013년 ‘Wite Elegy(애가)’전, 이 전시의 붕대를 칭칭 감고 한쪽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는 작품 ‘Vanished’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monologue’전은 이전 전시와는 다른 ‘변화’가 보인다. 붕대와 눈물이 사라진것은 ‘상처’를 대하는 작가의 성숙해진 자아의 반영으로 이는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가녀리고 병약한듯한 작가의 작품 속 미소녀는 여전히 잔잔한 슬픔을 전해주고 있지만 어느새 성장해 더이상 무기력한 모습이 아니고 내면의 성찰이 더 깊어진 시선으로 우리를 응시한다.

김영민 전시기획자는 작가의 변화된 세계에 대해 “그린다는 행위는 거울을 보는 행위와 유사하다. 자신 혹은 대상을 마주보는 재현이 회화가 가진 본래적인 특질이라고 할 때, 권경엽의 그림은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이라는 거울 속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과 그 은밀함 그리고 대상이 주체를 응시한다는 점에서 회화의 본래적인 특질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평한다.

권 작가가 만들어낸 화면은 작가의 거울이자 보는 이의 거울이다. 예술의 본래적 의의가 자기에게로 향하는 행위로서 예술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관객에게 신선한 ‘울림’을 줄 것이다. @hankooki.com



박종진기자 jj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