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에 관한 작은 나침반 하나 만들어” 30년 동안 전국 3,500곳 맛집 찾아 깐깐한 검증 거쳐 579곳 엄선 음식에 대한 놀라운 통찰 ‘음식인문학’ 맛 이상의 맛집에 담긴 숨겨진 이야기 참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시대와의 불화입니다.” 음식평론가 황광해씨. 30년 동안 약 3,500곳의 전국 맛집들을 다녔노라고 했다. 그중 자료를 챙긴 곳만 1,500곳. 최근 <한국맛집 579>라는 ‘맛집단행본’을 냈다. 본지에 ‘이야기가 있는 맛집’을 이미 150회 연재했다. 음식 평론가, 맛집 평론가의 자격증은 없다. 그러나 이미 TV맛집 프로그램에서 ‘깐깐하게 음식 검증하는 일’을 업 삼아 해왔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시대와의 불화’라니. 지레짐작했던 ‘맛집 기행문’이 아니었다. 이미 알려진 맛집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맛집들, 그리고 방송에서 찾아낸 보석 같은 맛집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곧 사라질 음식에 대한 아쉬움과 애정, 음식 만드는 사람들의 진정성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쳐온 음식에 대한 놀라운 통찰로 가득했다. “나름 열심히 다녔는데, 우리 시대가 원하는 맛과 제가 원하는 맛이 참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다 맛있다고 하는데 저는 별로고, 가끔은 저는 아주 맛있는데 대중들의 반응은 맛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결국 시대와의 불화인 셈이죠.” 그는 ‘인상비평’을 하지 않는다. 맛집을 이야기할 때 늘 핑계 삼는 소리가 있다. ‘나는 좋은데…’ 내 주관성을 존중해 달라는 이야기다. 그에게는 그런 전제가 없다. “맛은 주관적이지 않습니다. ‘나는 좋은데 너는 어때?’라는 표현은 엉터리입니다. 맛은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북엇국을 먹는데 쇠고기 맛이 납니다. 그런데도 그냥 맛있다고들 합니다. 이게 엉뚱하다는 겁니다. 북엇국에서는 잘 손질한 북어의 맛이 나야죠. 쇠고기 맛이 나는데도 무작정 ‘맛있다’라고 표현하니까 자꾸 맛이 주관적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겁니다.” 그동안 ‘음식 먹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했다. 옷 입는 것, 인테리어 등 의식주(衣食住) 중 의(衣), 주(住)는 배우면서 정작 제일 중요한 식(食)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음식에 취향은 있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먹기는 하지만 즐기지 않는 음식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과한 조미료와 감미제, 성분을 알 수 없는 향미증진제 같은 이른바 식품첨가물에 지나치게 관대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음식 만드는 사람들의 진정성은 대부분 이런 식품첨가물을 최대한 덜 쓰거나, 안 쓰는 노력부터 출발합니다. 이런 조미료에 길든 입맛을 두고 요즘 ‘초딩입맛’이라 하더군요. 어릴 때부터 조미료에 길이 들면 평생 식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을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조미료가 내는 맛이 식재료의 맛이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그러니 음식의 맛도 옷이나 인테리어처럼 학습과 경험으로 배워야죠.” 이를 두고 책의 머리말에서 ‘음식의 식민지배’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썼다. “음식을 내 입맛대로 먹는다고 하는 바람에 우리는 아직도 음식에 관한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기본적인 식재료, 밀가루, 설탕, 조미료 등이 모두 일본에서 기계를 가지고 왔고 또 기술전수를 받은 겁니다. 한식, 한정식은 상당수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잔재물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책에 쓸 예정입니다. 음식은 장맛이라는 표현에 해답이 있습니다. 장(醬)을 바로 세우면 한식은 바로 섭니다.” 후속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책이 궁금해진다. 그래도 지금 궁금한 것은 역시 ‘맛집’을 찾는 일이다. 과연 깐깐한 그의 입에 맞는 맛집들의 기준은 무엇이며 또 어떤 집을 맛집이라고 꼽을까? 그가 다녀본 3,500집 중 손꼽는 579 집은 어떤 곳들일까? “작은 나침반을 하나 만들었다고 믿습니다. 이 나침반으로 어떤 지도를 구성할는지는 독자들의 몫입니다. 비교적 쉽게 가볼 수 있는 집부터 다녀보고, 좋은 집, 내 입에 맞는 집, 또 가고 싶은 집을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맛집을 찾기 전에 스스로의 판단기준을 정해야 합니다. ‘남이 알려준 맛집’이 아니라 ‘나의 맛집’을 찾을 기준부터 찾아야 합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그가 던진 말이 흥미롭다. “인스턴트 음식을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맛집 찾는 일은 인스턴트식으로 합니다. 따라쟁이는 영원히 따라쟁이입니다. 자신의 맛집을 찾아야 합니다.” @hankooki.com 사진=이규연 기자 ■황광해 프로필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경향신문사 기자. 음식평론가. 채널A ‘먹거리X파일-착한식당’검증위원, MBC ‘찾아라 맛있는 TV’ 검증위원, KBS ‘한국인의 밥상’ 등 출연. 네이버 맛집카페 ‘포크와젓가락’ 매니저. 저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오래된 맛집>, <줄서는 맛집> 등.



박종진기자 jj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