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5주년 굴곡진 삶과 노래 전해
인천 인화여고생 시절, TV에서 여성 드러머의 연주 모습을 보고 반해 삼각지에 있던 음악학원에서 정식으로 드럼을 배웠다. 실력이 붙으면서 시민회관에서 열린 아마추어 재즈경연대회에 출전을 해 장려상을 수상했다. 밴드 참여제의를 받고 그룹 '논스톱'의 드럼 주자로 미8군 클럽 무대에 섰다. 1973년 여고를 졸업하면서 서울 소공동 고급 이태리 레스토랑 '라 칸티나'에서 아르바이트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어느 날 유명 밴드 마스터 엄토미가 보광동 개인파티에 피아노 반주를 부탁해왔다. 그 파티는 청와대 박종규 경호실장이 주최한 연회였다. 이후 비밀 사교 파티에 자주 불려 나가며 1975년 결국 박정희 대통령과 첫 대면하면서 결국 격동의 현대사에 연루되는 악연을 맺었다.
심수봉의 데뷔는 대학가요제보다 5년 전에 성사될 뻔 했다. 1975년 초여름 밤 남산 도큐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노래를 하던 심수봉은 선배가수 나훈아가 찾아온 것을 보고 그의 히트곡을 부르는 재치를 발휘했다. 그녀의 노래에 재능을 감지한 나훈아는 1976년 신세기 레코드에 데뷔음반제작을 주선했다. 당시 녹음했던 노래는 후에 빅히트를 터트린 '여자이니까'. 당시 심수봉은 나훈아와 혼성듀엣으로 노래를 취입했지만 흥행에 확신이 서지 않아 음반제작을 하지 않았던 것. 1979년은 심수봉에게 극과 극을 체험시킨 한 해였다. '그때 그 사람'은 MBC TV 금주의 인기가요와 TBC TV '가요 베스트7'의 정상에 등극했다. 또한 MBC 10대 가수상, TBC와 KBS신인가수상을 휩쓸며 정상의 가수로 떠올랐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10ㆍ26 궁정동 시해사건'이 터지면서 그녀는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1980년 11월 박호태감독의 영화 <아낌없이 바쳤는데>로 재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주제가 '순자의 가을'은 노래 제목에 '영부인의 이름이 나온다'는 이유로 금지되어 컴백의지를 꺾었다. 이 노래는 1983년 방미가 히트시킨 '올 가을엔 사랑 할꺼야'의 원곡이다. 1984년 방송 출연 금지가 해지되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로 시작으로 '당신은 누구시길래', '무궁화', '축제 이야기'로 히트퍼레이드를 벌였다. 1987년에 발표했던 '사랑밖엔 난 몰라'는 그녀의 음악 정점이다.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듯 한의 정서를 사랑으로 승화시킨 그녀의 창작 트로트 곡들은 비로소 '심수봉류 트로트'라는 독창성을 획득했다.
2010년 KBS TV '가요무대'는 '국민가요 100곡'에 대한 인기도를 설문조사했다. 그때 '그때 그 사람'은 '최고의 국민가요'로 선정되었다. 또한 70년대 인기곡 순위에서도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사실 '그때 그 사람'은 문병을 갔다 친구의 남자 친구가 기타를 쳐주는 모습을 스케치한 그녀의 창작곡이다. 삶을 진솔하게 담은 애절한 이 노래는 사랑의 갈증에 공감하는 많은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글·사진=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