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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 '최헌기전' , 불화의 시대 예술과 자유를 묻다

  • ‘붉은 태양’, 2013, Variable size, Installation mixed media
시대와 삶과 예술은 작가에게 숙명이다. 다만 시대에 처한 삶이 작가마다 다르고 세계를 보는 관점에 따라 예술도 차이를 나타낼 뿐이다. 성곡미술관이 2015년의 첫 전시로 소개하는 최헌기 작가의 지난 30년 화업은 시대와 삶과 예술의 긴밀한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헌기는 중국에서 태어난 동포 작가로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경계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회화와 설치 작품으로 표현해 왔다. 그의 부모는 일제 강점기 고향(전남)을 떠나 중국 지린성 백두산 근처에 정착했고,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꼬마 화가’로 불릴 정도로 재능을 나타냈다. 옌볜대 미술과를 나온 그는 30대에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 다시 입학해 두각을 나타냈다.

드물게 중국 문화권에서 예술 활동을 해온 작가는 시대와 예술의 다양한 층리를 보여준다.그의 작품에는 자신이 살아온 중국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과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서 정체성의 혼란과 새로움에 대한 모색의 흔적들이 나타나 있다. 나아가 현대사회에서 모두가 겪고 있는 현대화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아노미와 자신이 받아온 사회주의적 교육에 대한 회의와 고민이 담겨 있다. 또한 전통에 대한 향수와 동시에 현재의 예찬 그리고 새로운 문명에 대한 비판 역시 그의 작품의 주조를 이룬다.

이번 전시는 1관 ‘자화상 시리즈’로부터 시작한다. 자화상은 작가의 근원에 대한 고민이자 확인, 또는 삶과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탐색의 과정이다.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해법 찾기와 함께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과 시대정신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반성을 통해 불분명하고 모호한 삶의 경계에 대한, 예술의 경계와 역할에 대한 작가로서의 지적 고민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준다.

1994년 작 ‘자화상’은 일반 자화상과는 달리 작가의 ‘얼굴’이 없다. 대신 흐릿하게 형태가 일그러진, 한국의 태극기와 중국의 오성홍기 그리고 북한의 인공기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당시 중국내 예술창작의 자율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작가는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물감으로 덮고, 당시 관객들로부터 자화상을 인정받는 서명을 받았다. 작가 자신의 뿌리와 존재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또 다른 예술인 셈이다.

전시 2관은 기존의 가치와 정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동시대의 현실과 당대정신과의 조화 속에서 다시 새겨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현실에 대한 비평, 그리고 서구 문화의 범람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 시대를 표현하고 있다.

  • ‘자화상’, 1994, (each), Oil on canvas
설치작 ‘붉은 태양’은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의 동상을 쓰러뜨리고 붉은 심장을 가진 허수아비를 세워놓은 작품으로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이런저런 말들과 자본주의적인 욕망이 공허하게 뒤엉킨 기형적 풍경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설국의 자장가’는 한 아버지의 구성진 한국어 자장가가 흐르는 가운데 얇은 천이 족자처럼 천장에서 드리워졌고 그 사이로 그가 개발한 ‘광초’(狂草·미친 초서)가 흘러내린다. 글씨처럼 보이지만 의미 없는 형상으로 중국문화에서 자랐지만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구가하겠다는 뜻이다. 또 다른 작품 ‘6자 회담’은 북핵문제 해결이 각국 이해관계에 얽혀 우리 민족 문제를 결코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경계인의 현실 비판적 안목이 담겨 있다.

작가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자신의 예술적 목표로 삼는다고 한다. 이는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치열한 자기 탐구의 여정에 따른 것으로 이번 전시는 작가의 깨어 있는 이성과 관점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소명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02-737-7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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