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담긴 동양적 정신 발현
작가는 2007년부터 도자로 된 찻잔과 고서적에 천착해 신선한 양식과 메시지로 미술계의 조명을 받아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더욱 성숙해진 ‘Flow-Bowl’과 ‘Flow-book’ 시리즈를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최근 많이 보이는 동양적 정신의 서양적 재현이지만, 동양적 구도나 소재, 매체를 이용한 것이 아닌 철저히 동양적인 정신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검은 색에 가까운 짙푸른 회색 배경을 시그너처로 한 그의 작업은 소박하고 낡은 듯한 오브제, 거기 담긴 내러티브를 상징하는 듯한 수평 혹은 수직의 선들, 물감의 질감은 두텁게 올려 입체감을 은근히 부여하는 세련된 감각으로 최근의 화려한 작품들 속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고 있다.
작가는 도자기 그릇들을 이차원의 화면에서 빚는다. 그가 그린 도자기는 언뜻 재현된 사물처럼 지각되지만 단순히 도자기 그 자체의 형태적 아름다움의 표현물이 아닌 관념성의 향기를 발산한다.
전시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그가 그린 ‘사물’은 ‘은유’로 사용된 하나의 장치이다. 화면의 사물 자체로도 빈티지 가구를 볼 때처럼 편안함과 소박하면서 세련된 느낌을 느낄 수 있지만 그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사물에 담긴 그 무엇이다. 이것은 작가가 찻사발이나 빛바랜 고서의 물성을 화면 전면에 배치하고 나머지 여백을 어둡게 처리해 한없이 깊은 공간감을 연출한 작의(作意)이기도 하다. 그래서 재현을 넘어선 환유의 공간, 형태 너머의 소우주, 명상적 공간을 마주하게 된 관객은 사유와 치유의 시간을 제공받는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