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곡은 넘쳐나지만 명곡이 없는 시대

히트곡은 넘쳐나건만 모든 세대가 공감하는 명곡이 없는 세상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노래 한 곡이 히트되려면 최소 3개월 정도는 기본이었던 과거 아날로그 시절과는 달리 디지털 시대의 대중가요들은 발매 즉시 음원차트 정상을 차지해야 되는 지상명제를 지니고 탄생한다. 문제는 아침에 음원차트 정상권을 차지한 노래가 저녁엔 차트에서 완벽하게 사라지는 황당한 일까지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차트 정상을 차지한 노래조차도 기억되지 못하고 순식간에 폐기되는 부작용이 심각지경이다.

이는 ‘이건 딱 내 노래’라고 공감할 진정성을 담은 노래보다 트렌드에 매몰되고 현란한 춤과 의상 그리고 섹시한 비주얼에만 치중된 소모적인 음악환경이 빚어낸 참담한 결과다. 또한 감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요즘 대중가요 가사들은 세대 초월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메시지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단체문화에 익숙한 7080세대들은 새마을운동 노래를 들으며 잠자리에서 일어났고 애국가와 교가 그리고 사가를 함께 부르면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또한 학창시절 MT나, 소풍, 캠핑을 가면 어김없이 둘러 앉아 캠프 송을 부르거나 단체놀이를 즐기는 놀이문화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그 시절 즐겨 불렀던 노래 한 구절만 부르기 시작하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합창으로 이어진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어떨까? 컴퓨터와 디지털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후, 함께 즐기는 단체문화는 과거의 유산되었다. 요즘은 이어폰을 끼고 혼자서 mp3 노래파일을 듣는 소위 혼자놀이문화가 대세를 이룬다. 이제는 공동체보다는 개성이 중시되고 의미 있는 메시지보다는 오감을 자극하는 단순 반복적이고 뜻을 알 수 없는 외계어가 난무하는 노래들이 범람하는 시대가 되었다. 깔끔하고 세련된 웰메이드 노래들은 넘쳐나지만 감동이 사라진 랩 댄스노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어른세대는 극소수다.

어느 시대의 대중이건 자신들이 즐겨듣고 불렀던 노래가 어떤 이유로 유행했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하지만 대중가요는 그 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와 밀접한 관계 속에 탄생되며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멀리 일제강점기에는 나라 잃은 서러움을 노래한 유행가들이 식민지 대중의 가슴을 울렸다. 해방 때는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을 대변했고 한국 전쟁 때는 황폐해진 마음과 이산의 아픔을 위로하는 위대한 역할을 해냈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의 재건이 시급했던 60년대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밝고 경쾌한 도회풍의 노래가 장려되었고 역동적인 군가풍의 노래가 사랑받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통제와 억압적 사회분위기가 세상을 우울하게 했던 7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는 은유적이고 맑은 노래들이 시대의 아픔을 노래했다.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80년대에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쳤던 민중가요가 주류 인기가요 차트에 진입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처럼 대중음악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시대마다 많은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의 소임을 다하며 명곡의 지위를 획득했다. 온 나라를 눈물의 해일에 휩싸이게 했던 1983년 KBS 1TV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전쟁으로 끊겼던 핏줄을 잇기 위한 간절한 ‘스무고개’가 완성될 때마다 국민의 눈물샘을 타고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다. 그때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잃어버린 30년’ 같은 절절한 시대성을 담은 대중가요가 우리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며 명곡으로 탄생되었다.

90년대 들어 세상을 지배한 랩과 댄스로 대변되는 신세대 음악은 스타시스템이 도입되며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노래가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감동이 사라지는 폐해를 동반했다. 2000년대 들어 사회전반에 불어 닥친 복고문화는 잃어버린 감동과 그 시절의 낭만을 찾는 구체적 표출이다. 동시대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본연의 역할을 잃어버리고선 절대로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명곡은 탄생될 수 없다. 히트곡은 존재하되 명곡은 없는 시대는 진정성을 외면하고 상품성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일그러진 문화현상이 빚어낸 피할 수 없는 숙명인 셈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