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비틀즈 결성 50주년을 맞아 국내 팬들이 마련한 ‘비틀즈 50년-한국의 비틀즈 마니아’ 전시회를 보면서 감동했었다. 비틀즈를 추억하고자 열린 그 전시에는 비틀즈가 발표했던 오리지널 앨범과 국내에서 발매한 라이선스 앨범, 불법 복제앨범, 사진, 영화자료, 잡지, 포스터, 신문기사 스크랩, 잡지 등 국내에 전해지는 비틀즈 관련 자료들이 다채롭게 선보였다. 비틀즈 국내 팬들이 모은 실로 다양한 소장품들을 보면서 국내 뮤지션의 이런 자료 전시회는 언제나 가능할지 부러웠다.

서울 신도림역 개찰구 앞에 위치한 예술 공간 고리에서 9월8일부터 11일까지 나흘 동안 밴드 들국화 결성 30주년을 기념하는 팬클럽 자료전시회가 열렸다.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곳인지라 소박한 전시장 안에는 들국화를 기억하는 팬들과 이색적인 전시회에 눈길이 간 행인들의 발길이 분주했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LP음반을 플레이하는 턴테이블에서 들국화 멤버들의 주옥같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한 전시장 구석구석을 빼곡하게 장식한 팬들이 모은 다양한 들국화 관련 자료들은 한동안 그 공간에 머물게 만들었다.

들국화 자료 전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에도 서울 용산구의 녹사평역에서 자료들이 전시된 적이 있었다. 들국화 팬클럽은 서태지 팬클럽에 버금가는 열정의 모임이다. 2013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드러머 주찬권의 1주기를 앞두고 팬클럽 멤버들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고 주찬권의 모든 앨범 리뷰를 중요 평론가들에게 의뢰하는 내용이었다.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작업이기에 팬클럽만의 콘텐츠를 가지겠다는 의욕은 놀라웠고 밴드 들국화에 대한 이 모임의 애정과 진정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팬클럽의 소장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위에 빛나는 1985년에 발표된 들국화 1집 탄생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전시회는 전문 큐레이터의 손길과는 거리가 있는 많은 것을 협소한 공간에서 보여주기 위한 백화점 식 구성이었지만 팬들의 정성과 열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팬들 각자가 소중하게 간직해온 음반, 포스터, 공연 입장권, 티셔츠 등 각종 캐릭터 상품, 기사 스크랩, 사진들은 익숙한 것들도 많았지만 진귀한 자료들도 즐비했다. 특히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음악연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밴드 들국화의 기념관이 탄생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명예는 소중한 것이고 존경받아져야 하는 고귀한 것이다. 각 분야마다 다채로운 명예의 전당이 존재하지만 국내에는 공식적인 대중문화분야 명예의 전당은 없다. 혹 명예로운 배우, 감독, 뮤지션, 작곡가, 연주가가 없기 때문일까? 인정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빛나는 예술혼으로 대중문화를 꽃피우고 살찌운 거장들이 너무도 많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많은 가수들이 자신의 노래인생 10주년 20주년 30주년 40주년 심지어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여는 분위기가 뜨겁다. 그만큼 우리 대중가요도 연륜이 쌓였다는 증거이고 오랜 기간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롱런하는 가수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명이다.

기념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한국대중가요의 역사에 대한 기록문화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많은 가수들은 기념 공연이나 이벤트와 병행해 과거 방치해두었던 자신들의 자료를 모으는 아카이빙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내 대중가요 자체를 보존해야 될 가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았기다. 국내 대중음악역사나 중요 뮤지션들의 업적을 증언할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보존되지 못한 것은 그 결과물이다.

이번 들국화 30주년 팬클럽 자료 전시회처럼 기댈 곳은 좋아하는 뮤지션의 시시콜콜한 자료까지를 챙겨 모은 팬덤이나 일부 개인수집가들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도 대중의 관심을 견인하는 대중 문화인들의 헌정 자료전시회가 계속되길 기대해 본다.



글ㆍ사진=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