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일상성에서 건져낸 보편적 울림

'그곳을 바라보다' 260.6x162cm, Acrylic on linen, 2015
오늘날 '도시'는 현대인들의 삶에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다. 도시는 삶의 터전이지만 때로는 고단한 공간이기도 하다. 삶이 머물고 부대끼고 그려지는 도시, 도시와 삶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래서 도시, 도시의 생태는 여러 장르의 주요한 소재가 돼왔다.

미술만 하더라도 많은 작가들이 도시를 다뤄왔다. 하지만 작가들마다 도시에 다가가는 길이 다르고, 도시와 대화법이 다르고 거기서 끄집어내는 것도 달라 도시는 다양한 모습으로 비쳐졌다.

송지연 작가에게도 도시는 각별하다. '도시 작가'로 불릴 만큼 '도시'에 천착하고 있지만 도시를 대하는 작가의 심상과 작품이 전하는 메타포는 다른 도시 작가들과 차이가 있다. 굳이 구분한다면 '일상성의 보편적 울림'이라고 할까, 작가는 도시의 일상성에서 소소하지만 무한 가치를 지닌 것들을 작품에 담아 보편적 공감을 전한다.

작가는 말한다. "도시는 내가 나고 자란 고향 같은 곳이다. 그런 도시를 보고 거닐며 느끼는 대로 도시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 나를 찾는다"고.

작가는 그런 도시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10월 14∼27일까지 개인전'그곳을 바라보다'전을 통해 전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온에서', 116.8x91cm, Acrylic on linen, 2015
작가는 주로 자신의 삶의 터전 주변 풍경을 화면에 담아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을 한다. 그 방식은 독특하다. 작가는 무심코 도시 속으로 들어가 공간, 사람, 바람, 햇빛 등 도시의 속살을 대한다. 그리고 그들과 무언의 대화를 한다. 도시가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면 그에 화답하고 이런 과정을 거쳐 자신과 마주한다. 도시를 바라보는 나(작가)와 나에게 반응하는 도시, 그런 둘 사이의 상응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나를 통해 도시는 작품에 담기고 '실존의 나'를 비춘다.

그렇게 작가가 그려낸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작품 속엔 사람들의 웅성거림, 소리도 들리고, 냄새도 나고 따뜻한 햇살의 그림자와 빗물, 그리고 눈과 바람도 있다.

작가의 도시는 두툼한 질감과 거친 화면으로 울림을 더한다. 작가는 칠하고 지우고 다시 새롭게 칠하는 과정을 통해 자아의 의미를 찾는다고 말한다. 그 칠하는 작업은 도시와의 대화이고 독백이고 도시가 말없이 전하는 감흥이다.

작품 속 도시는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유지함으로써 대상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해체하고 흐리게 만들어 회화적인 효과를 보여준다. 그래서 빽빽하게 들어찬 도시의 건물들이 모나고 딱딱하지 않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근한 존재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작년 프랑스 '파리국제예술공동체'에서 머물며 작업한 37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작가에게 환경은 달라졌지만 도시의 일상성에 충실한 작업 방식은 일관돼 있다.

'센강을 거닐다' 194x73cm, Acrylic on linen, 2015
작가는 유명 관광 명소 대신 일상의 공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거리를 순례하듯 거닐며 느낀 것을 화폭에 담았다. 작품에는 도시의 랜드마크적인 모티프가 등장하기보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표정들이 담겨져 있다. 가끔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와 랜드마크가 등장하는 경우에도 그것들은 작가의 손을 거쳐 일상으로 편입된다. 작품 '몽빠르나스에서'의 에펠탑이나 '사그라다 파밀리온에서' 가우디의 대성당은 그다지 드러나지 않고 파리와 바르셀로나 도시풍경의 일부로 흐릿하게 표현돼 있다.

여기에 독특한 질감과 햇빛에 표백된 듯한 인상을 주는 도시의 표정은 시간의 두께를 떠올리며 도시의 존재성과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일반이 살면서 늘 접하는 평범한 도시가 지닌 가치와 너무 일상적이어서 잊고 지낸 도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상기시키는 의미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02)734-0458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