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설' 단초 의문, 미술계 '음모론'… 경찰 부당 수사 논란 일어'위작설' 출발부터 의문… 왜곡된 풍문 확대 재생산일부 미술계 인사 감정권한 놓고 李화백 압박 소문이화백 작품 감정 요구에 경찰 묵살… 대파장 부를 수도

이우환 화백은 지난해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 초대를 받아‘이우환의 베르사유 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연합뉴스
"이우환 하나 죽여서 대한민국 정부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 "도대체 몇 년째 실체 없는 위조설로 작가를 죽이고 대한민국 문화 국격을 떨어뜨리려고 하느냐."

이우환(79) 화백은 격앙된 목소리로 몇 년째 계속되는 위작 논란에 대해 한국 미술계의 행태와 경찰의 부당한 수사를 질타했다.

지난 10월 23일 건강 검진을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에 온 이 화백은 다음날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간 자신의 작품을 둘러싸고 벌어진 한국 미술계의 위작 시비와 이를 수사하는 기관의 문제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위조범이 있으면 잡으면 되고, 그 증거를 나에게 보여주면 되는 것을…. 나라가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이 화백은 인터뷰를 하면서 중간 중간 말을 끊고 호흡을 조절하는 등 울분을 삭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우환 화백의 친필 확인서.
이 화백 작품에 대한 위작 시비가 불거진 2012년 중순부터 최근까지 기자는 다수의 관계자들을 만나 '이우환 위작' 사건의 실체에 접근했다. 그리고 위작 시비나 경찰 수사가 본질과는 다른 방향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목격했다.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세계적 거장을 멍들게 하고 미술계를 어지럽히는 '이우환 위작' 사건의 본질을 추적했다.

'이우환 위작' 사건 단초에 문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0월 16일 이우환 화백의 위작을 유통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인사동의 한 화랑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이 화백 작품 6점을 압수했고 화랑 대표 K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이후에도 경찰은 K씨를 여러차례 불러 '위작'의 배후를 캤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반면 이 화백은 국내 상황을 접하고 큰 실망과 함께 한국 미술계와 정부 기관에 회의를 보였다. 지난달 23일 귀국한 이 화백은 국내에 머무르는 동안 위작품을 확인하고 경찰이 압수한 작품을 감정해 진위를 가리겠다고 했으나 경찰이 "보여줄 수 없다"며 묵살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K씨는 경찰이 수시로 부르고 거래처를 탐문하는 등 영업에 지장을 줘 막대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었다. 경찰은 3일 K씨를 다시 불러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이우환 위작' 사건에 본격 나선 것은 올해 상반기로 '첩보'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첩보의 핵심 내용은 '위조범이 100점이 넘는 이우환 작품을 위조했고 모 화랑을 통해 유통시켜 100억대의 수입을 올렸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6월 22일자 '위조된 이우환 그림 100억대 거래 의혹' 기사에서 그 같은 내용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21일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위조해 국내외에 유통한 혐의로 A씨(65) 등 7명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 등은 이 화백의 기존 작품 수 점을 모작(模作)한 뒤 B화랑을 통해 경매에 부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씨 등이 이 화백 위작을 판매해 100억원대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위조 전문가로 1990년대에도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위조한 모작을 유통시킨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7월 13일자 '이우환 화백의 위작, 150점 이상 국내외에서 유통' 기사에서 "서울경찰청은 이 화백의 작품을 위조해 국내외에 유통한 혐의로 위조 전문가, 화랑 관계자 등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이 경매에서 위작을 판매해 100억원대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파악했으나 핵심 피의자가 해외로 도피,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경찰발(發) 기사에 따르면 위작범이 이 화백의 작품을 100점 이상 위작했고 이를 화랑을 통해 유통시켜 100억원대의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이는 '사실(Fact)'과 크게 다르다. 즉 경찰이 수사에 나선 '첩보'내용은 물론, 언론 보도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

경찰 수사의 근거가 된 첩보와 신문 기사에 나오는 위작범은 현모(65)씨로 서울 장안평을 활동 근거지로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고서화(주로 민화류)를 취급하거나 위작해 판매하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현씨는 고서화(또는 위작품)를 고미술업계 종사자 이모(66)씨 등을 통해 일본에 판매해왔다.

그런데 2013년 중순 현씨와 이씨 간에 돈 문제로 다툼이 생겼다. 그해 8월 현씨는 서울 종로구 경운동 소재 고미술상을 운영하는 임모씨 가게에 찾아와 "이씨와 모의해 2010년 경 이우환 작품을 상당량 위작했고 이 작품들을 이씨가 판매해 100억원대의 빌딩을 구입했고, 또 다른 김씨도 판매에 가담해 50억원을 벌어 외제차를 구입했는데 나한테는 몇 푼도 주지 않아 분하다"고 성토했다. 현씨의 발언은 인사동을 중심으로 퍼지면서 '이우환 위작' 사건의 발단이 됐다.

그러나 화랑계 인사들이 현씨와 이씨, 김씨 등의 재산 상태를 확인한 결과 현씨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즉 100억원대의 빌딩을 구입했다는 이씨의 경우 부산에서 10억대의 건물을 구입한 것은 사실이나 구입대금 중 3분의2가 은행융자로 위작품을 팔아 100억원대의 재산을 증식했다는 부분은 믿기 어려웠다.

K씨 경우도 부산에서 3000만원 임대료에 40만∼50만원 정도의 월세를 내는 10평 미만의 조그만 화랑을 힘겹게 운영하고 있었다.

현씨는 이 화백 작품을 위조했다는 발언의 파문이 커지자 2013년 11월 미술계 유력 인사에게 '이우환 위조' 사건을 실토했다. 현씨는 "이씨에게 민화를 주고 돈을 받기로 했는데 돈도 주지 않고 민화도 받지 않았다고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여 이우환 작품을 위작해 줬다는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했다.

위작설 소문이 증폭되는 과정에 파리에 체류중이던 이우환 화백은 2013년 11월 25일 귀국해 '위작'을 막고 자신의 예술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실체없는 위작설이 나오는 것은 자신의 예술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판단한 이 화백은 "내예술을 범죄 및 명예훼손과 각종 권리침해 등으로부터 굳건히 지켜 예술한국 천년의 빛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비장한 심정을 관계자들에 전하면서 이에 필요한 법적 장치까지 한 후 12월 1일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때 자신이 작품을 잃어버린 스토리까지 상세히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이 화백의 당부를 받은 다수의 인사들이 국내 이 화백 소장자 대다수를 대상으로 작품 소장 경위 등을 일일이 확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이 화백 작품 판매 화랑 전부와 소장자 대다수 등 200여명의 인사들을 상대로 수년에 걸쳐 확인한 결과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진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 화백은 실체없는 위작설로 작가를 죽이려는 음모가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작품 확인은 작가가 하는 것인데 왜 자격없는 사람들이 시비를 하는 것일까에 대한 끝없는 회의가 작가를 엄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소란 과정에서 이미 이 화백은 "근거없는 위작설이 나오는 한국적 상황이 너무 힘들다"며 "확인은 작가가 하는 것인데 작품창작에 열중하겠다"면서 2013년 10월 1일 현대화랑 박명자 회장,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에게 이 화백 작품을 감정할 수 있는 권리(위임장)를 건네주기까지 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전개

작가가 작품을 창작(서명 등)하고 이를 확인(보증)하는 것은 세계각국 공통법이다. 타인이 감정하려면 권리(위임장, 대리권)를 양도(승인)받아야 한다. 이 화백이 박명자ㆍ신옥진에게 작품감정위임이란 법률적 효력이 있는 위임장을 작성ㆍ교부한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작품 확인권은 작가에게 있다. 이를 뒤집기 위해서는 위조범 검거 및 증거자료(위작품) 확보와 육하원칙에 따른 범죄사실을 제시해야 한다. 작가의 확인은 판결에 해당하는 법률적 효력이 있으며 기타 감정단체의 결과는 추정되는 의견에 불과 할 뿐 법적 효력이 없고 인정되지 않는다.

이 건과 관련해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이 화백 미술품 관계자에게 이 화백의 미술품을 감정할 수 있는 위임장을 달라고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이후 몇 번 같은 취지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는 이 화백 외에는 관행적으로 감정을 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건 관련해 협회가 이 화백 작품의 감정이 들어오자 현대화랑을 통해 이 화백에게 확인을 요청했고, 이 화백은 상세한 설명과 함께 진품이란 확인을 해 주었다.

이렇게 작가가 확인한 작품(진품)에 대해 협회측 인사들이 '아니다'란 설을 흘리고 있다는 풍문이 돌면서 무슨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마저 들려오고 있다.

작가 확인 거부한 경찰…사회적 대파장 우려

이우환 화백은 10월 24일 인사동 모 갤러리로부터 압수한 작품을 확인하기를 원했으나 경찰이 거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 부모가 자식을 확인하겠다는데 이를 거부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나…중대 결심을 하겠다"고 격양했다. 이 화백은 문화국격이 흔들릴 수 있는 중대사태라고 판단한 것이다.

급기야 이 화백은 "지금까지 내가 보고 사인한 것은 다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이 수년간 나는 단 한점도 가짜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향후 이상한 것이 있으면 다 내가 보겠다"는 확인서를 작성하면서 비통해 했다.

또한 경찰은 부산의 모 인사에게 전화해 "작품이 가짜"라고 해 격렬한 항의를 받기도했다. 부산의 이 화백 작품 소장자는 경찰청장은 물론 관계요로에 진정하겠다면서 전화내용을 녹취까지 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 관계자들은 "아무런 근거없이 소유자에게 전화를 해 '가짜' 등을 거론하는 것은 '건전한 상거래는 국가가 보호한다'는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공동체 질서 파괴행위에 해당될 수도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미술품 수사의 출발은 위조범 검거 및 위조미술품 확보에서 출발되고, 이런 증거를 국가(경찰)에서 확보한 후 관련자들을 추적해야 한다. 위조미술품 확보가 관건인 것이다.

현재 경찰에서 위조미술품을 확보한 후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다. 미술인들은 수사과정에서 선량한 거래 질서 보호라는 사회공동체 근본원리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위조와 관련 없고 범죄혐의가 확정되지도 않는 것을 수사한다는 말들이 인사동 등에 널리 퍼져가고 있고, 심지어 손님에게까지 전화한다는 설이 퍼져 많은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미술 관계자들은 이우환 화백이 문화국력의 상징이고 한국미술문화발전을 꽃 피워온 거대 화랑이 관련돼 있는 전대 미문의 사건으로 인해 문화국력 위상추락은 물론 세계적 파문이 야기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 화백 또한 근거없는 설로 작가를 죽이려 할 경우 "중대결심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만일 경찰 수사가 실체가 없거나 이 화백이 확인해 준 작품들과 상관없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 근거 없는 설로 작가를 죽이려 했다는 거장의 고함 소리에 우리 정부가 고개 숙여 사죄를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