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권의철… 'History' 초대전, 3월4~27일 '영등포 갤러리'

History, 85.5×85.5㎝×3 Mixed Media, 2016
풍상을 스스로 껴안아 마침내 세월과 해후한 것인가. 방방곡곡 양지바른 곳이나 켜켜이 쌓인 퇴적깊이 연륜을 묻고 고행하듯 발견되는 흐릿한 비문(碑文)과 사랑했던 여인을 잊지 못해 암각화에 새겨놓은 부용화의 예스러운 자태가 여전하다. 'History'연작은 시간의 간극을 초월한 끝없는 생멸순환의 감응이 동시성으로 일어나는 형상화다. 이 다큐멘터리적인 작품세계는 자연계에 새긴 후소(後素)이자 동시에 역사물에서 창조적 영감을 얻은 심상의지를 픽션으로 그려낸 히스토리텔링이기도 하다.

작업은 물에 불린 한지 등을 캔버스에 중첩되게 눌려 붙여 도구를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다. 종이가 마르면서 우러나는 색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조화를 추구하는 것도 작업묘미다. 그러나 자연 상태로 건조되는 시간을 기다린다지만 너무 말라버리면 강도가 높아 칼끝이 부러지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은 물론 수행하듯 정신집중과 노동을 요구한다.

권의철 화백은 경북상주 남산중학교시절 인근 남장사(南長寺)에 자주 놀러가곤 했었는데 그때 이미 비석 등의 내용을 주제로 그리는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한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유학 와 서라벌고등학교에 진학해 그림공부에 매진했고 1964년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에 입학한다. 이후 1974년 제23회 국전(國展)에 역사를 테마로 한 비구상한국화작품을 시작으로 1984년까지 무려 일곱 번이나 입선한다.

그는 이때 이미 단색작품을 선보였었다. "40여 년 동안 하나의 테마 'History'에 천착해 왔다. 작업소재 자체가 무량한 시간의 흔적들을 조형화하는 것으로 회색, 검정, 흰색 등이 주조색이다. 처음부터 단색화(Dansaekhwa)를 그려야지 하고 그린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단색작업으로 이어 온 것"이라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빨강, 청색 등의 색채를 선보이는데 뭔가 강인하고 따뜻한 마음을 부각하려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권의철(Kwon Eui Chul) 작가의 스물세 번째 개인전은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 다옥빌딩 8층, '영등포 갤러리'에서 3월4~27일까지 열린다. (02)2679-1982



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