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초대전 ‘禪-2016’, 선화랑 4월27일~5월3일

“그림 그리기 전에 먼저 스케치를 하지 않아요. 붓을 들면 그림에 대한 생각을 안해요. 그저 붓이 마음을 따라 움직일 뿐이지요. 물 흐르듯이 자유롭게.”

법관(法觀) 스님의 화법은 각별하다. 스님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수행의 마음이 그림으로 드러날 뿐이다.

동양회화에서 흔히 말하는 의재필선(意在筆先), 즉 붓을 들기 전 마음속에 그 형상의 궤적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것과 달리 내면에서 저절로 용출되는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화면을 구축해 나간다.

이는 2007년 스님의 개인전 ‘비산비수전(非山非水展)’ 의 함의와 상통한다. 스님은 도록의 글에서 “산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따라 들어가다 보니 어느새 깊은 산이 되어 있네. 무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같이 보고 싶었네”라고 했다.

마음을 따라 드러난 산과 같이 스님의 그림은 일종의 심화(心畵)로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가는 선화(禪畵)이기도 하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법관스님의 작품세계는 색, 선, 면의 결합으로 작품을 통해 수행자로서 자신의 신분과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일치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며 “그의 그림 제작 방법은 선(禪) 수행의 방식을 닮았다”고 평했다.

그런 법관 스님의 선화의 세계에 들어가 마음을 청정하게 할 수 있는 전시가 애플갤러리 초대로 4월27일~5월3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禪-2016’이란 타이틀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예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비구상작품의 연장선으로 한층 심화된 수행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스님의 그림은 법명처럼 ‘法’을 ‘觀’한 듯하다. 불교에서의 법은 최고의 진리, 존재, 실체 등을 뜻하며 깨달음의 의미로 널리 쓰인다. ‘觀(관)‘은 그러한 법, 깨달음을 직관하는 것으로 수행의 지난한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깨달음은 이 현상세계에서 몸과 마음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인식 체계 이전의 것을 깨닫는 것이다. 즉 ‘무아(無我)’를 깨닫는 것이다.

법관 스님의 그림은 그러한 깨달음에 이르는 무위(無爲)의 발현으로 인식, 구상 이전에 마음이 붓을 움직인 흔적이다.

“수행자의 궁극적 목적이 깨달음인데 그림을 그릴 때 태풍의 눈이라고 할까요. 태풍 안의 고요함, 자유로움을 얻고자 하는 마음 같죠.”

어쩌면 깨달음에 이르러 얻는 고요함, 자유로움 밖의 태풍은 복잡다단한 세속일 것이다. 선(禪), 수행은 태풍을 뚫고 들어가는 고행의 과정이다. 법관 스님의 그림은 그러한 수행의 과정이고 결과다. 그래서일까 스님의 작품을 대하면 알 수 없는 편안함과 고요함에 잠긴다.

이번 전시 ‘禪’은 단색화 같은 추상화다. 그러나 그림이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종래의 단색화와는 본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제그림을 단색화로 분류를 하는데, 내면의 세계를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고요하고 잔잔하고 편안한 선(禪)의 세계를 그대로 표현한 것 뿐이죠.”

그러한 법관 스님의 그림에 대해 박영택 미술평론가(경기대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스님의 그림은 애써 무엇을 그리기보다 인간의 삶과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며 환영을 배제한 소박한 화포에 그저 물감을 스며들게 하고 칠했을 뿐이다. 정의할 수 없고 규명할 수 없고 형상화할 수 없는 것을 그리려고 했으며 자연과 같은 세계를 그리고자 한 듯하다. 결과적으로 스님의 그림은 모두 일루전(환영)과 작위적 형태나 표현적인 제스처를 부정​하는 추상, 이른바 탈형태 추상회화이자 동시에 캔버스 천과 물감, 붓만으로 이루어진 자족적인 회화가 되었다.

청색이 주조를 이룬 그림은 우주세계나 은하계, 호수의 아침 물빛, 멀리서 보는 도시의 불빛 같기도 하다. 외부적으로 다양한 형상으로 느껴지는 그림은 사실 스님이 수행을 통해 다다른 잔잔하고 고요한 지점에서 마음이 빚은 것이다. 마음을 따라 그려진 선(線)은 면이 되고, 면은 점이 된다.

“나는 선을 그리고 있지만 선이 반복되면서 서로 선이 교감하고 융합하면서 화면이 스스로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작품에서 청색은 ‘깨달음’을 상징한다. 스님은 “청색은 이성적이고 지혜로움을 상징한다. 수행자는 가장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유사한 듯하면서도 모두 다르다. 수행하는 순간 순간 마음(卽心)이 다르고 붓질도 달라지는 까닭이다.

“ 보이는 것에 치중하지 않고 느낌으로 그리는데 매일 다르고, 매일 변합니다. 변화는 보이지 않을 정도여도 저 한테는 매일 크게 변하죠.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변화를 이루죠.”

법관 스님은 이번 전시와 관련, “그림을 통해 평상심(平常心)이 전달돼 관객들이 편안하고 잔잔해졌으면 한다”고 했다. 전시명 ‘禪’은 스님의 참선 수행이 관객의 평안함으로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02-734-0458

박종진 기자

*사진 캡션

禪, 116 x 91cm -아크릴,캔버스

禪, 161 x 130cm ,캔버스 아크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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