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정약용의 사랑과 시대 비판

다산 정약용 일대기 과거 현재 넘나드는 역사소설로

당대 부정부패ㆍ부조리 고발…우리 현실과 오버랩 돼

조선 후기 대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을 다룬 책은 전문서를 비롯해 교양서, 소설 등 여러 장르로 발간됐다.

그만큼 다산의 학문적 업적이 크고 파란만장한 삶이 역사적, 대중적으로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조리한 당대를 질타하고 가렴주구의 관리를 꾸짖으며 백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다산의 사상과 마음이 현대에서도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렇듯 다산을 연구, 조명하고 픽션화한 많은 책들에서 느껴지는 아쉬운 부분은 ‘간극’이다. 즉, 전문서는 일반과 거리가 있고, 교양서는 심심하며, 소설류는 대중성이 지나쳐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거나 과대하게 부풀린 경우가 적지 않다. 다산이 박제화되거나 가공 인물로 비화돼 일반에 깃들지 못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속 다산을 실감나게 그리며 현재로 불러내 부조리한 현실을 호되게 나무라는 모습을 그린 책이 최근 출간됐다. 드라마 ‘겨울연가’ 테마곡을 만들어 히트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연세영(예명. 데이드림)이 6년간의 남도 취재와 집필을 통해 조선 후기 부정부패와 부조리를 신랄하게 고발한 퓨전대하소설 ‘차왕(茶王)’(명에디터, 상하 권)이다.

신작 ‘차왕’은 기존 다산 관련 소설들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현대와 과거(조선시대)를 넘나드는 탈시공적 구성이다. 소설의 도입부와 말미는 현대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조선시대 때 이야기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부조리를 우리 현실과 오버랩시켜 잘못된 정책을 꼬집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낸 탐관들을 벌하는 장면은 현시대와 중첩되면서 통쾌하기까지 하다. 특히 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 속에 역대 대통령, 정치가와 국회의원, 검사와 기자, 기업주가 익명으로 등장한다. 약간의 시사상식이 있는 독자라면 바로 알 수 있다.

다음은 6년간의 꼼꼼한 취재가 바탕이 된 역사적 고증이다. 저자는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의 초당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5년여간 사투를 벌였다. 정조와 정약용, 정약용 형제들이 처형되고 유배된 신유사옥(1801년에 일어난 천주교 탄압사건), 정순왕후,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 등 역사적 배경과 인물에 대한 이해는 웬만한 학자를 방불케 한다.

끝으로 60여 점에 달하는 삽화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는 이전 다산 관련 저서에는 없는 독특한 시도로 저서에 대한 이해와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이는 책이 물 흐르듯 읽혀지는 것이 마치 드라마나 영화 대본을 보는 듯한데 실제 극화를 염두에 두었다는 저자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현재의 어느 날, 옥션 경매장에서 시작된다. 옥션에서 다산 정약용의 작품이 선보이지만 가짜다.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진우는 그림을 낙찰받으려던 회장에게 알려주고 회장은 진우의 도움으로 날릴 뻔한 80억을 건지게 된다. 이후 진우는 회장의 요청으로 회장 딸과 다산미술관을 만들게 된다.

미술관 자료를 모으던 중 ‘남당가’라는 다산의 이야기를 담은 시편을 구하게 되고 이야기는 신유박해 당시 조선시대로 넘어간다. 1801년 천주교인들에 대한 박해로 다산의 형인 정약종은 참수, 약전과 약용은 각각 유배 가게 된다.

유배지에서 다산은 다원이란 사람에게 차를 배우고 초의선사 등과 인연을 맺는다. 다산은 귀양지에서 잠시 떠나와 정순왕후를 알현하게 되고 암행어사 시절 보고 들었던 백성들의 굶주림과 애환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

이후 다산은 관가로 복귀하는 대신 백성을 위한 일들을 하며 총 500여 권의 장서를 집필하는 투혼을 발휘한다. 다산의 연인 서옥과의 러브스토리, 혜장 초의선사와의 선문답, 차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 정조대왕과의 밀약, 남당가의 비밀 등을 통해 재미와 감동으로 이끈다.

특히 소설을 끌고가는 매개체인 남당가와 얽힌 부분은 백미라 할 수 있다. 남당네라는 여인의 다산을 향한 애틋한 사랑과 한탄이 담겨 있는 총 16수의 시엔 다산의 인간적인 면모와 남당네의 순애보 같은 사랑이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미술관을 위해 남당가를 구하는 진우와 회장 딸은 그 시의 연인들처럼 사랑에 다가간다.

책명인 차왕은 ‘차의 으뜸’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차왕은 백성을 왕처럼 받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차를 풀 곧, 민초로 본 것. 백성(시민)을 강압적으로 다루거나 개, 돼지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책에서 이름이 거론되진 않지만, 최근 물의를 일으킨 못된 공무원들의 분신이 소설 속에 나온다. 군납비리와 지나친 세금 문제, 기업주의 부도덕성 등도 담겨 있다. 퀵서비스, 아이돌 스타, 격투기 선수, 음료 회사도 재치있게 나온다. 소설 속 인물인 천만호의 ‘솜 트는 기계 편’에서는 독자에게 기적같은 판타지도 선사한다.

또한 소설에서는 친일파 세력의 청산과 부정부패 척결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있다.

‘차왕’을 펴낸 저자는 “다산의 입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국면과 부정부패 척결해야 할 문제점들을 알리고 싶었다”며 “다산은 고위급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위해 일한 노력과 헌신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은 자질과 태도, 성품, 도덕성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

특히 다산 정약용은 조선시대 때 천재였지만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임을 알리고 싶었고, 고단한 삶을 포기하지 않은 집념과 투혼을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실제 퓨전대하소설 ‘차왕’이 전하는 가장 큰 매력과 덕목은 다산의 인간적인 면모와 갖은 박해와 시련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간 점이다. 다산의 휴머니티는 비인간화 돼가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고, 관료로서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오늘날 부패와 비리가 끊이지 않는 공직사회에 귀감이 될 만하다.

이러한 것들이 소설적 재미 속에 버무려져 있는 것은 ‘차왕’의 또 다른 큰 매력이다.

박종진 기자

- 책 이미지

- 연세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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