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작가 ‘썬샤인의 전사들’, 두산아트센터 9월 27일∼10월 22일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역사학자 크로체의 이 말은 역사의 존재론적 의미를 말하는 것이지만 이는 ‘살아있는 역사’일 때 가능하다. 다시말해 ‘잊혀진 역사’는 박제된 역사일 뿐이다.

역사는 ‘기억’ 속에 생동한다. 그런 역사가 때론 버거운 무게와 아픔으로 외면당하곤 한다. 이로 인한 역사의 죽음은 미래에 대한 사망선고이기도 하다. 역사를 망각한 개인, 국가에 미래가 없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모처럼 질곡진 우리 현대사를 상기시키며 역사에 동참토록 하는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9월 27일 막을 올린 김은성 작가의 신작 ‘썬샤인의 전사들’이다.

김은성은 2006년 ‘시동라사’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극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래 동시대 문제의식과 연극의 근원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다. 김 작가는 2011년 소식이 끊긴 딸을 찾아 한국으로 온 조선족 이야기 ‘연변엄마’로 대신창작기금을 받았고, 2012년 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탈북여성을 다룬 ‘목란언니’로 동아연극상 희곡상과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두산연강예술상 공연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신작 ‘썬샤인의 전사들’은 일제 강점기, 6ㆍ25. 세월호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 사건들을 통해 상실에 대한 트라우마, 남은 이의 부채의식 등 지금 우리 사회가 간직한 깊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은성은 작가노트를 통해 “제주도 동굴에, 장진호 협곡의 나무상자에, 만주 위안소의 쪽방에, 전장의 얼어붙은 참호 속에, 방공호 속에, 토굴 속에, 감옥 속에, 그리고 차디찬 바다 속에 갇혀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펜을 갈았다”고 밝혔다.

작품은 작가를 찾아오는 곳곳에 갇혀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형식을 취했다. 소설가 승우는 사고로 아내와 어린 딸을 잃고 슬픔에 빠져 절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나타난 딸 봄이의 부탁을 계기로 3년 만에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한 소년병의 전장일기를 모티프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이들, 나무상자에 갇힌 전쟁고아 순이, 제주도 동굴에서 잠든 어린 해녀 명이, 만주 위안소의 식모 막이, 작가가 꿈이던 카투사 소년병 선호와 화가가 되고 싶던 조선족 중공군 호룡, 시를 쓰는 인민군 군의관 시자의 이야기가 승우의 소설로 펼쳐진다. 작가는 “우리의 역사는 왜 이토록 참담하게 이어져왔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면서 시대별 사건 자체보다 그 안의 일그러진 삶에 주목해주길 바랬다.

‘썬샤인의 전사들’에는 극단 ‘달나라동백꽃’에서 호흡을 맞춰 온 부새롬이 연출을 맡고 손원정이 드라마터그로 참여했다. 배우 우미화 김종태 이화룡 곽지숙 권태건 전박찬 정새별 이지혜 심재현 조재영 노기용 장율 박주영이 출연한다. 공연은 10월 22일까지 이어진다. 02-708-5001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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