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라이프

이념의 무덤서 피어난 어떤 돌올함!

서양화가 선종선‥‘생명과 영혼에 대한 물활론적 서사’작품세계

동자가 물었다. “리(理)라는 글자는 무엇 때문에 만물을 낳고 낳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生生化化) 근본이 될 수 없습니까?” 대답하였다. “리란 본디 죽은 글자지. 만물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만물을 주재할 수는 없지. 생물(生物)에 있어서는 생물의 리가 있고, 사물(死物)에 있어서는 사물의 리가 있으며, 사람에게는 사람의 리가 있고 물(物)에는 물의 리가 있지. 그렇기 때문에 리는 만물의 근본이 될 수 없는 게지. <동자문(童子問),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지음, 최경열 옮김, 그린비>

의자는 인간이 앉는 기능의 사물로서만 의미를 갖지만 화면은 그런 일상적 가치를 전도시키고 있다. 작품 ‘은유적 풍경’은 의자가 오히려 귀부인과 노동자의 무릎에 앉아 있는 상황을 표현함으로써 정치, 사회, 역사와 인습적 사고에 대한 철학적 이데올로기(Ideologie)를 반영하고 있다. 각 이미지들의 음영은 비광학적이면서 제각각이다. 빛의 광원인 태양이 동시에 여러 개 존재하는 세기말적 상황을 풍자한 것이다. 반면 ‘나무로부터’작품은 모든 이데올로기들을 완전히 파기하고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 형식을 드러내 보인다. 나무라는 사물과 작가가 내밀하게 조응한 애니미즘(animism)적 세계를 표현하여 사물에 대한 집중된 접근과 유희 같은 형식이미지들이 조응한다.

‘내’가 우주를 만들어가는 행보

2년여 만에 선종선 화백을 경기도 분당에서 만났다. 간결하고도 담백한 화법은 더 깊어진 듯했다. 그의 작품세계를 중심에 놓고 한 인간에게 있어 삶을 생각해 보는 것이 화두였다. 그러니까 인생의 전반부가 개인이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도 없는 선천적인 이른바 아프리오리(a priori)한 것으로부터의 제약에 의해 형성된 숙명적 자아라면 후반은 그것의 속박과 전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절대 절명의 마지막 기회공간일 것이라는 공감에 이르기까지. 그렇다면 그 성패는 무엇에 좌우될 것인가. 작가는 “축적된 사색의 도가니 소위 멜팅 팟(melting pot)의 틀을 파괴하는 에너지의 크기가 아닐까”라고 했다.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이라고 전제했지만 “그 에너지의 크기란 영유아기의 반복된 옹알이가 끝나고 외물을 인지하게 된 날로부터 비워진 술잔의 높이가 까마득하게 쌓여진 중장년까지 축적되어 모든 이데올로기의 임계점에서 자가 폭발한 후 그 정적이 깊을수록 비례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인생 전반이 역사와 정치사회적 조건으로부터 ‘나’를 계측하고 조사(照射)하는 것이었다면 인생 후반기는 그 반대로 ‘나’를 기점으로 한 거대 이데올로기에 대한 가역적인 측정을 자세히 대조하여야 할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그것은 이전의 자아가 우주로부터 연원했다면 이제는 자기가 스스로 우주를 만들어가는 행보의 시작선상과 연동된다는 관점으로 귀결되었다.

작가는 “나의 예술에 있어서 그것은 모든 일상이 은폐하고 있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한 물활론(物活論)적 서사를 만들어내는 작업이자 외부로부터의 모든 이데올로기들을 무덤에 파묻는 장엄한 고별의식이 될 것”이라 단언했다. 그럼으로써 “그로부터 피어난 유유자적함을 최대한 확장시켜 나의 정신과 심리세계가 막막한 밤하늘의 유성처럼 무장무애해지는 것. 우주가 나를 억압하는 세상이 아닌 내가 우주를 조정해가는 그리하여 나와 우주의 경계가 무화(無化)되는 그날이 이승에서의 닻을 내리는 지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선종선 작가는 개인전을 12회 가졌고 몬테칼로국제현대미술대상전, 오사카트리엔날레, 후안미로국제드로잉비엔날레 등 국내외 전시에 다수 참가했다. 화백은 자신을 에워 쌓았던 모든 과거의 이데올로기로 부터 홀연히 유체이탈 하여 자신을 기점으로 우주를 관조하고 농을 걸고 싶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정말 망령 같은 모든 담론들을 장사지내고 그로부터 벗어난 나만의 적막한 무한지경에서 문득 돌올(突兀)해져야 한다.”

권동철 @hankooki.com

-은유적 풍경, 163×90㎝ 캔버스 유채

-나무로부터, 100×80㎝

-선종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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