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석철주… ‘신몽유도원도’시리즈 작품세계

“평평한 것은 물이 완전히 고요해진 상태입니다. 이것이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은 안에 고요를 간직하고 밖으로는 출렁거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덕을 이룬 사람은 조화를 이룬 사람으로,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서 떠나지 못합니다.” <느림과 비움의 미학, 장석주의 장자읽기, 푸르메>

아득하지만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온다. 구름과 안개의 기꺼운 재회인가. 리드미컬하게 솟아오른 적막감의 연봉(連峯)사이 격렬한 에너지의 용솟음이 감돈다. 오랜 세월 마음속에 담아둔 꿈이면 이렇듯 절경이런가. 세월이 지나면 상처에 새살이 돋듯 저 심산계곡서 퍼 올린 청량한 물로 형태를 그리고 넓은 편필로 지우면 배어나온 화면이다. 오래오래 숙성된 장맛처럼 스밈과 지움 그리고 비움이 빚어낸 미학은 더더욱 가슴을 덥힌다. 이미지의 재탄생, 새로움의 발견과 다름 아니다. 꿈의 일부분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격자(格子)의 얼개라는 기하학적인 감각적 형상을 통해 차안과 피안의 세계를 펼쳐낸 것이다.

작가는 “청춘의 시대엔 마음속 풍경들이 자리했으나 지금은 북한산, 인왕산 등 조금 더 사실적이고 구상적인 대상이 존재하는 산수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안평대군의 꿈과 마음, 현실과 이상을 담았듯 나의 신몽유도원도 역시 깊이 내재된 마음을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최근 ‘2016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 출품한 화백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동산방 화랑에서 인터뷰했다. 지난 1985년 서울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거의 5년 마다 그림소재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1985~1995년=장독을 주제로 명태, 하얀 하선지를 본떠 만든 버선모양, 정한수 한 그릇 등이 화면에 어우러진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일깨우는 ‘Life Journal’시리즈다. 1990년 두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항아리그림은 ‘화가 석철주’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1996~2000년=이 시기는 자유로운 내면으로 돌아가서 그린 풍경들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창호지, 사각형 또는 집모양의 창을 통해 비쳐지는 구름과 하늘, 풀밭, 강물에 흔들리는 댓잎 등 ‘Beyond the Window’를 발표하였다. 작가는 “2000년도 금산갤러리 전시에서 신몽유도원도(New Scenery in Dream) 발현씨앗이 싹트고 있었다“라고 했다. △2001~2005년=2001년 아트스페이스서울에 이어 화백은 2002년 ‘청전 이상범 선생께’라는 제하의 글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때 제 그림은 풍경 속에 점경인물(스님)이 산사로 걸어가는 모습이었는데, 그림 속에 인물은 없어도 된다며 ‘필요치 않는 것은 굳이 넣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비움의 미학을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후 2005년 학고재갤러리 전시명제가 바로 신몽유도원도이다. △2006~2016년=오늘날까지 10년 넘게 신몽유도원도를 발표하면서 한켠에는 자연의 기억(The Memory of Nature)시리즈를 꾸준히 선보였다. 특히 2009년 학고재초대전은 신몽유도원도의 결정체라는 호평을 받았다.

한편 석철주 작가는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작업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색과 공부하고 작업하며 지냅니다. 모름지기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하고 그럴려면 작업량이 많아야 하는데 요즈음 제2의 창작생활이라 여기고 더욱 매진하고 있지요. 나의 작품을 보고 오래오래 기억에 남고 싫증나지 않는 울림의 여운이 길게 남아 퍼져가기를 소망 합니다”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화가의 길에 대한 화백의 고견을 들어보았다. “신체의 일부이지요. 태어나서 한길로만 왔는데 앞으로도 그 부분은 삶이 끝나기 전까지 똑 같이 가는 것입니다.”

권동철 @hankooki.com

#작품 캡션

신몽유도원도, 170×259㎝ 캔버스 위 아크릴&젤, 2016

신몽유도원도, 102×192㎝ 캔버스 위 아크릴&젤, 2016

석철주 화백



권동철 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