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라이프

일광에 터지는 인류 근원의 상형

서양화가 곽훈…‘대지로부터’초대전, 1월 26일까지, 피앤씨갤러리

추락은 거기서 공간을 창조하고 추락은 심연을 더 깊게 한다. 깊은 상상의 추락에 있어 무한한 공간이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 가볍고 역학적인 영상 하나로 인간의 존재 전체를 떨어지는 상태로 놓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 부드러운 힘의 영상은 만일 인간이 이 영상을 태어나는 상태에서 그것이 무의식 속에 새겨지는 순간의 모습으로 실감한다면 이미 천둥 같은 효력을 갖게 된다.”<대지와 의지의 몽상, 바슐라르 著 ‘불의 정신분석 초의 불꽃 외’ 中, 민희식 譯, 삼성출판사>

상형성과 추상성을 갖고 있는 문자다. 유리가 주는 햇빛과 한지의 차이가 있듯 우리 정서에는 한지가 맞다. 그것을 투과해 오는 일광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 종이 이전, 양피지(羊皮紙)에 글을 썼던 것을 지우고 다시 글을 얹는 팰림세스트(palimpsest)는 이전 내용을 부분이나마 해석 가능하다는 점에서 작가에겐 매력적인 영감을 제공한다. “한지를 보면 미친다고나 할까. 맹목적으로 반하게 된다. 문자와 한지가 주는 느낌이 어쩌면 재생되어 나오기도 하고 재생될 것 같기도 하다. ‘팰림세스트’연작은 그래서 한지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라고 했다.

주지하다시피 예술은 형식이 있다. 4악장, 기승전결처럼. 그림도 네 등분하면 시각적으로 편하고 밸런스와 대비와도 조화로운데 ‘대지로부터’ 전시 명제 저변에 흐르는 인식감각은 땅과 하늘이다. 이분법이다.

화백은 이렇게 밝혔다. “나의그림은 끊임없이 흙이나 대지라는 개념을 못 벗어나는 것 같다. 잠재의식 속에 하늘과 땅이 깔려 있는가보다. 나는 다섯 살 때 일제강점기 해방, 열 살 때 6.25 한국전쟁을 겪었다. 가난과 전쟁 속에서 유년을 보내며 비참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것들을 목격했다. 한국인의 본질은 한(恨)이다. 미국서도 그것을 시각화해서 데뷔했고 지금껏 이어져 왔다. 작품시리즈 ‘기(氣), 겁(劫) 등도 그 연장선으로 일관되게 한국적 소재로 작품을 해 온 것이다.”

길 없는 길을 가는 것

줄곧 미국서 활동하다 최근 몇 년 동안은 한국에 많이 머물며 경기도 이천시 율면에 있는 작업실에서 회화와 도자작업 등을 하고 있는 화백을 서울 삼성역 인근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1968년 신문회관에서 광학적 빛을 주제로 한 설치작업으로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75년 도미(渡美), 1980년 LA시립미술관에서 화려하게 프로작가로 데뷔했다. 1995년 이태리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개관전 한국작가로 선임되었고 1998년 현대미술메카 중 한곳으로 불리는 뉴욕첼시의 찰스 코울즈 갤러리(Charles Cowles Gallery)전시에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또 2000년도 베이징 룽바오자이(榮銅齋)갤러리와 2005년 중국 최대국립미술관인 중국미술관(The National Art Museum of China)개인전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각인시켰다.

곽훈 작가는 대구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순수미술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줄곧 서울, 대구, LA 등에서 2년에 한 번 정도는 개인전을 가져왔다.

이번 초대전은 ‘좀 더 강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는 150~200호 회화10여점을 포함하여 설치작품 등 30여점을 선보인다. 지난해 12월 22일 오픈해 1월 26일까지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피앤씨갤러리(Pnc Gallery)와 북구 노원로에 소재한 피앤씨풍국창고 두 곳에서 동시 진행하고 있다.

화백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예술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없는 것 같다. 우둔한지 아니면 예술이란 것 자체가 애초에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할수록 더 어려운 것 같다. 칠십 중반나이에 조금 눈이 떠진다고나 할까, 그것뿐이다. 화가는 길 없는 길을 가는 자이다. 자기가 만들어서 가는, 길!”

권동철 @hankooki.com

#작품캡션

-△(왼쪽)=Palimpsest, 259×194㎝ mixed media, 2016 △(오른쪽)=Chi(기), 227×162㎝, 2014

-Palimpsest, 227×162㎝, 2016

-곽훈(郭薰)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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