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정혜연…‘The Nature’개인전, 4월 5~11일, 갤러리 엠

“지금 숲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나무도 감각과 감정, 기억을 갖고 있다고? 나무들이 숲에서 서로 대화하고 소통한다고? 그들은 어린 세대를 사랑하고 보살필 뿐만 아니라 늙고 병든 이웃을 돌보기도 한다. 나무 한 그루가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주변의 다른 나무에게 위험을 알리고, 이 경고를 받은 나무들은 서둘러 대비하여 자신을 방어한다.”<나무수업, 페터 볼레벤(Peter Wohlleben)지음, 장혜경 옮김, 이마 刊>

연분홍 얼굴로 여명이 떠오를 때 잎들 사이 잔잔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하다. 휘어진 가지와 아름드리 등걸엔 여전히 미래를 밝히는 저력의 에너지가 생생하게 전해온다. 숱한 시련과 역경을 거뜬히 헤쳐 나온 청정한 혼(魂)의 위용이다. 무의식과 우연성을 떠올리게 하는 데칼코마니 기법은 유체이탈처럼 어루만질 수 없지만 공감의 입체이미지를 병행함으로써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충북 괴산 삼송리 소나무(용송)를 앞면과 뒷면에서 본 것을 서로 오버랩한 작품이다. 이파리들이 작아 반복해서 섬세하게 표현한 100호를 작업을 하다 보니 5개월여 시간이 소요됐는데 조금씩 채도를 바꿔가면서 전체적인 명암을 나타내려 했다.”

우주만물, 작은 세포서 출발

작가는 200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안토니 가우디가 타일을 무작위로 붙여놓은 구엘공원 이곳저곳 풍경을 보고 신성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유화로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강렬하게 스쳤는데 돌아와 작업에 매달린 것이 모자이크기법으로 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첫 작품소재가 소나무였다.

작업은 작은 조각형태를 서너 차례 세밀하게 반복한다. 면(面)을 나누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조각들을 하나하나 붙여서 큰 조각들을 이루어 형상을 만들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는 만큼 정교하다. “모자이크 하나하나를 작은 세포로 인식한다. 그들이 모여서 잎사귀도 되고 천년의 시간을 견뎌온 강인한 생명력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모든 우주만물이 세포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표현하려 했다.”

작가는 3년 전부터 발품을 팔아 소나무를 답사하고 있다. 인상 깊은 곳으로 해마다 찾는다는 충남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수목원과 인근을 꼽았다. “아주 조용한 곳으로 폐가(廢家) 앞 우람한 소나무는 아는 사람만 안다는 말이 절로 실감나게 한다. 닭섬과 소나무의 조화로움은 가히 절경이다. 나뭇가지 끝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그 가지 끝에 걸린 붉은 석양의 황홀경은 무심의 감화를 받게 한다”라고 했다. 또 강릉경포대 앞 소나무군락 등지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전했다.

정혜연 작가는 서울여대 미술대학을 졸업했고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수료했다. 2010년 예술의전당부스 개인전에서 13점이 솔드아웃 되었고, 미술세계상(賞)도 수상했다. 2013~2015년 프랑스파리 ‘살롱앙뎅팡당’전에 연속 출품하였고 2014년 국제앙드로말로협회 미래작가상을 받았다. 이번 열두 번째 개인전은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소재 갤러리엠(Gallery M)에서 4월5일부터 11일까지 소나무작품을 비롯한 꽃, 석양, 솟대 위에 앉은 새, 바다와 말(馬) 등 신작 25점을 선보인다.

여류화가의 길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피력했다. “여성에게 결혼이란 그림을 계속하기에 난관인 것임에 틀림없다. 나 역시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 다시 붓을 잡았다. 종종 그림을 가지고 밥 먹고 살려했다면 고난의 길이었을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한편으론 감사하다. 나의 세계를 담아내는 이 길을 오랫동안 건강하게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권동철 @hankooki.com

-Nature-용송, 162×130.3㎝ oil on canvas, 2017 ⒸADAGP

-53×40.9㎝, 2016 ⒸADAGP

-정혜연 작가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