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는 완전히 모든 것을 순화시키고 죽음과 부정성을 전멸시키는 세계 속에서 파국적인 역할을 맡아야하며, 그 자체가 파국과 도발의 요소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유는 동시에 인간에 관심을 갖는 인간주의적인 것으로 머물러야하며,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선과악의 가역성,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의 가역성을 다시 찾아내야 한다.”<암호,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배영달 옮김, 동문선 刊>
나직한 자장가, 애써 설렘을 감추며 다감하게 속삭이는 사랑의 밀어처럼 화면은 그지없이 부드럽고 온화하다. 세월의 흔적이 배어있듯 사각의 각진 모서리는 경계를 허물어 열린 마음의 조화를 이룬다. 하늘의 뭉게구름, 유연하게 수면에 아른거리는 저녁노을빛처럼 중첩의 색채는 깊은 사유의 시간으로 인도한다.
“일생을 내 예술의 영성(spirituality)을 상실하지 않고 변절되지 않은 채 오직 한 길을 지켜오고 있다. 물려받은 우리의 전통적인 정신과 물질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색채와 공간성 등 한민족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것이 1960년대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50여 년 동안 ‘동시성’이라는 동일한 명제를 오랫동안 고집스럽게 지켜 온 내 작품세계의 요체다.”
하나에 대해 깊게 생각하라
“나는 1972년도 일본에 가서 전시했는데 작고하신 일본 미술평론가 나카하라 유스케(中原佑介)씨를 알게 되었다. 그분이 이듬해 한국에 와서 당시 한국현대미술작가 중에서 한국만의 독특한 색채를 찾고자했고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하얀 것이지만 중성적 흰색이었다. ‘일본에 없는 흰색’이라고 매우 놀라워하며 감탄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연장선에서 흰색과 관련된 한국작가를 발견하여 1975년 일본 동경화랑(東京畵廊, 5월6~24일)에서 ‘한국ㆍ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白(白 韓國·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展을 가지게 되는데 바로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이동엽, 허황 작가이다.
“작고하신 권영우, 박서보 작가 등이 나보다 연배가 높지만 함께 활동했다. 일각에서 단색화를 거론하면서 세대별로 나누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단색화 1세대화가다. 단색화가 30~40년 후 우리나라에서 꽃피우게 되었는데 나는 이 길을 평생 걸어오고 있고 ‘단색화’라는 이름 앞에 먼저 대두되었다.”
한편 서승원(74)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명예교수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현대, 워커힐, 센다이, 시모노세키미술관과 영국국립박물관 등에 작품소장 되어있다. 이번 개인전은 5월 17일부터 6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노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권동철 @hankooki.com
#작품캡션
-(왼쪽)동시성(Simultaneity), 162×130.3㎝ Acrylic on canvas, 2016 (오른쪽)162×130.3㎝, 2017
- 동시성(Simultaneity), 162×130㎝ Oil on canvas, 1977
-서승원(Artist SUH SEUNG WON) 화백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