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써니 킴…‘올해의 작가상 2017’, 9월13~2018년 2월1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깨달았다. 내 발목 한쪽에 감긴 낡은 밧줄조각이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풀을 스치며 끌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밧줄을 발목에서 풀어내고는 달빛을 향해 들어 올려 살펴보았다. 손에 쥔 밧줄은 축축하고 흙이 묻어 있었다.”<창백한 언덕 풍경(A Pale View of Hills), 가즈오 이시구로(kazuo lshiguro)著, 김남주 옮김, 민음사 刊>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미숙하지만 그 나이에선 기억이 다 있는데 이전에 알고 있던 것들이 갑자기 뒤바뀌는 것에 충격이 컸다. 굉장히 많은 새로운 인식체계를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 무력함, 두려움, 낯선 상황에서 나를 위로하고 도닥이는 기억의 형상들을 찾아 나서지 않았나 싶다.”

써니 킴 작가는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까지 다니다 사춘기로 막 접어드는 시기에 미국뉴욕으로 이민 가서 그곳에서 성장하게 된다. 화면은 픽션이지만 누구에게는 굉장히 리얼리티 한 장면으로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장롱 속 앨범이나 어느 신문에도 있을 법 한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보이며 누구나의 개인적인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미미한 존재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남녀를 불문하고 교복 입은 자아가 존재하는 아주 구체적인 기억의 흔적으로 자연스럽게 관객과 만난다. 예전 작업은 디테일요소가 배재되고 플랫하게 판화처럼 패턴적인 느낌이었다. 근작에 개별성을 부여하는 것이 궁금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이미지를 상상하면 교복 입은 소녀들이 또렷해지는 것이었다. 어릴 때 한국에서 살면서 주위에서 보았던, 그러니까 내가 겪은 게 아니라 내가 본 나의 미래모습인 것 같다. 그것이 퍼펙트 한 이미지로 각인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20여년을 ‘소녀’를 품고 그려왔는데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이상형의 모습을 지금까지 만들어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다.”

교감의 공유 회화적 헤게모니

작품 ‘소녀들’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절망과 희망 등 아주 근원적인 감정들이 표출되는 과정의 응축으로 해석된다. 현대의 복잡한 생각구조 속에서 뭔가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이를테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처럼 굉장히 원류적인 정신세계에 대한 성찰의 영상으로 끌어당긴다. 바로 그러한 교감을 공유하는 힘 그 지점이 ‘소녀들’의 회화적 헤게모니 일 것이다.

써니 킴 작가는 미국뉴욕 쿠퍼유니언대학교에서 회화 및 헌터칼리지대학원에서 종합매체를 전공하여 석사 졸업했다. 일민미술관, 갤러리 현대16번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SBS문화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 공동운영 ‘올해의 작가상 2017’ 수상작가로 9월13일 오픈하여 2018년 2월18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평일인데도 전시장에는 관람자가 줄을 이었다. 작품 앞에서 화가의 길에 대해 물어 보았다. “내게서 회화는 매우 내면적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도구다. 어렸을 때부터 그렸었기 때문에 늘 해오던 행동인데 항상 경로가 완벽한 이미지였었다. 그러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딘가가 무엇의 결핍이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될 줄 알았던 교복 입은 소녀에 대한 상실감, 잃어버린 잡히지 않은 것에 대한 공허함이 내 삶 속에 있다. 나는 그것을 채워 넣으려 붓을 든다.”

권동철 @hankooki.com

#작품 및 인물캡션

-교복 입은 소녀들, 162×75㎝(each) Acrylic on Canvas, 2009~2017 <사진=서종현>

-자줏빛 하늘아래, 168×116㎝

-써니킴(ARTIST SUNNY KIM)작가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