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순ㆍ조기주 모녀전’…공아트스페이스 11월 1∼7일

구순의 나이에도 화업을 멈추지 않는 어머니를 위해 딸은 60년 이상 주고받은 예술의 열정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11월 1일부터 7일까지 서울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이경순ㆍ조기주 모녀전’이다. ‘모녀 전시’는 1994년 처음 함께한 이래 2015년 미수(88세) 기념으로 열렸고, 이번이 세번째 모녀전이다.

이경순 화백은 1950년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미술 정규 교육을 받은 1세대 국내파 화가로 국전에서 특전 4회(12,13, 23, 24), 입선 16회의 경력을 지녔으며, 국전 출신 여류 화가로는 최초로 1977년 추천작가가, 1982년에는 초대작가가 됐다.

이 화백은 초기(1950∼69)와 중기(1970∼89)에는 주로 정통적 인물화와 정물화에 집중했고, 90년대부터는 ‘장미화가’로 불릴만큼 장미 연작을 선보였다. 90년 중반 이후엔 완자창을 배경으로 도자기와 화병, 소반과 궤 등 한국의 전통적인 멋을 살리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꽃과 정물을 어울려 그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창을 경계로 실내와 실외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치는 등 칠순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자신의 작업양식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방법론을 추구해 미술계와 후학들에 귀감이 되고 있다.

이 화백의 딸인 조기주 작가(단국대 서양화과 교수)는 어머니와 같은 대학.학과를 나와 화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작품 양식은 전혀 다르다.

조 작가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차점에서 비구상적 작품을 선보여왔다. 주로 원(圓)과 점, 그리고 선을 이용해 그것들이 상징하는 우주와 순환, 창조, 생명성 등을 형상화했다. 그 양식도 회화, 설치, 영상, 단편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하다.

이번 전시는 이경순 화백의 70여년의 작품 활동을 회고하며 이 화백의 작품 30여 점과 전시를 준비하면서 찾아 낸 50~60년 대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딸에 대한 애정이 담긴 ‘기주’ 연작과 1963년 12회 국전서 특선한 ‘소녀상’, 90년대 후반 이후 새롭게 창작한 신작 등 다채롭다. 시대별 작품들은 한국 현대미술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조기주 작가 전시작은 시멘트 재료로 만든 작품과 드로잉, 영상, 설치작 등 다양한 양식이 특징이다. 시멘트 화면과 종이 위에 물감 덩어리나 녹슨 금속 등을 ‘얼룩’처럼 올려놓은 작품은 현대 문명사회의 상징적 부산물로 하찮게 여겨지는 재료들을 의미있는 작품으로 재탄생시켜 작가 특유의 순환과 연속을 표현한다.

전시 타이틀 ‘연속, 그리고 불연속’은 조 작가가 2006년 제작한 영화 제목에서 따온 것으로 모녀의 관계성과 예술세계를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1일 전시장에서 만난 조 작가는 “ ‘연속’은 어머니와 딸이라는 운명적 관계, 같은 화가의 길을 가는 의미로, ‘불연속’은 그러면서도 다른 삶, 작품 세계를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조 작가는 “어머지는 자신과 같은 작품을 하는 것보다 비구상적인 작품을 하는 것을 좋아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어머니의 작품이 답답해 보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작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사적 의의를 갖기 위해 작품을 하거나 거창한 철학적 명제만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솔직한 정직한 작품을 계속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어머니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진실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경순 화백은 “내가 그린 그림이 딸이 그린 것과 내용이 다르지만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은 똑 같다”며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의지하고 생활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국내와 해외에서 여성 작가로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열정과 성실함을 이어받은 덕분에 지금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활동할 수 있었다”며 “이번 전시는 구순의 어머니께 드리는 딸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이 화백의 전시작 중에는 조 작가를 그린 ‘기주’ 작품이 여럿 있다. 홍지석 미술편론가는 “이 화백 입장에서 딸(기주)은 ‘나’이면서 ‘또다른 나(타자)’라고 할 수 있고. ‘또 다른 나’는 이 화백도 지배할 수 없는 ‘다른 나’ 즉, 초월적 존재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이는 조기주 작가 작품 세계의 핵심이 ‘초월’과 관련된 점에서 의미가 연결된다. 조 작가는 논리와 감성의 합일체를 회화상에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재현하려는 과정을 소중히 여긴다.

“원을 그리고 또 그것을 부수는 것은 나의 논리와 감정의 합일(合一)을 추구하는 나의 노력이며, 그 합일로 이 천차만별의 현실을 넘어선 무한하고 절대적인 초월의 세계를 화면에 재현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구순의 이 화백은 이미 예술에서 ‘초월’의 의미를 간파했는지 모른다. 딸 기주가 ‘또 다른 나’인 초월적 존재로 작품화되고, ‘장미’ 연작이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동일성)과 계속 변하는 것(차이)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에 관한 회화라는 점에서 엿보인다.

그렇게 보면 ‘연속, 그리고 불연속’의 차이와 경계는 조금 무뎌지지 않을까. 그래서 딸의 선물인 ‘모녀전’이 더욱 빛날 수 있다면 이번 전시는 깊이 들여다볼 만하다.

박종진 기자

-11월 1일 전시 오픈식에서 어머니 이경순 화백과 조기주 작가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로 1963년 12회 국전서 특선한 ‘소녀상’과 ‘기주’(1971) 작품이 보인다.

- 이경선 작,‘뜰의 장미’ 90.9x65.2cm oil onlinen. 2004

-이경순 작‘기주’, 90.9x72.7cm oil onlinen.1963

-조기주 작, ‘Untitled-1668-mp’ 67.6cm diameter.mixed on cement. 2016

-조기주 작, ‘Untitled-1733-grd-01’ 33x33cm. on mixed media on cement.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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