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예술이 공존하는 소박하고 깊이 있는 밥상… 전국에서 찾아와
지역 식재료 위주, ‘정성’으로 버무려… ‘소민전골’ 대표 음식
충남 공주시 의당면 청룡리. 외진 곳이다. 공주보다는 차라리 세종시가 가깝다. 제법 너른 터 위에 이 있다. ‘공주민속극’. 민속학자이자 1인극 배우인 남천 심우성 선생(1934년∼ )이 평생 모은 자료를 담았다. 바로 곁에 ‘미마지’가 있다. 음식점이다. 음식점 주인이자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도영미 대표를 만났다.
웃으면서 말한다.
“결혼을 하려고 하니까 친정어머님이 반대를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정확히 몰랐는데 나중에야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 것이라는 뜻이었는데.”
도영미 대표와 남편 심하용 씨. 두 사람은 서울의 어느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친한 친구들끼리 모이는 평범한 모임이었다. 어느 순간 두 사람 모두 고향이 공주로, 같다는 사실을 알았다.
도영미 대표는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울과 공주를 오가며 사귀는 동안 친정어머니가 말렸다. 간단한 이유다. 시조부, 시조모님과 시어른 부부가 모두 생존해 계셨다. 그야말로 층층시하 시집살이를 할 판이었다. 친정어머니가 반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심하용 씨는 이른 1970년생, 도영미 대표는 늦은 1969년생이다. 생일이 몇 달 차이가 나지 않으니 두 사람은 닭띠, 동갑이다. 스물아홉 살 무렵, 두 사람이 결혼했을 때 이미 심하용 씨는 아버지 심우성 선생의 뜻을 받들어 고향에서 건립 일을 하고 있었다. 대단한 공사현장은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 거처를 정하고 현장 감독 일을 하고 있었다. 건물과 더불어 건물에 들어갈 각종 유물들을 건사하는 일까지 해야 하니 다른 이에게 일을 맡길 수도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 지금 자리에 오니 별다른 건물도 없고 당장 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 에 오시는 손님들 식사할 공간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천막을 치고 국밥을 끓이는 일이 제가 할 일이었지요. 식당 일을 알 리도 없고 음식을 만들 줄도 모르고, 그저 집에서 먹던 그대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시할머니를 비롯하여 시댁 어른들이 계셨으니까 그분들 조수를 한 거지요.”
심하용 씨는 4대 독자다. 아들 귀한 집안에 시집 와서 도영미 대표는 아들만 둘 낳았다. 시조부, 시조모, 시부모님이 귀여워할 만하다. 게다가 서울에서 항공사 승무원을 했던 며느리가 팔을 걷어붙이고 국밥을 끓여 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했을 법하다.
“결혼하고 나서 ‘나가서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집안에 어른들이 많이 계셨으니까 아무래도 불편할 테니 나가서 살아보라고 하셨지요. 그때 ‘네, 나가서 살겠습니다’ 했어야 하는데(웃음).”
어른 네 분에 시고모님이 세 분 더 계셨다. 다들 멀리 사시면서도 번갈아 ‘친정 나들이’를 했다. 끊이지 않고 친정나들이를 이어 가니 당연히 이분들과도 더불어 지냈다. 2층 집이었다. 도영미 씨 부부는 아래층에, 위층엔 어른들이 계셨다.
2010년 무렵 ‘미마지’의 문을 열었다. 처음부터 이름난 식당은 아니었다. 을 찾는 이들을 위한 식사공간으로 출발했다. 시골이니 을 찾는 이들이 밥을 먹기가 힘들었다. 체험학습을 하는 이들이 찾아와도 마찬가지. 단체로 식사할 공간이 없었다. 인근은 대부분이 농가다. 결국 안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그 무렵, 정부, 지자체의 ‘농가맛집’ 선정 작업이 시작되고 곧 ‘농가맛집’으로 지정받았다.
“딸은 친정어머니에게 음식 만드는 기본을 배우게 되지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친정어머님에게 배운 부분이 있고 한편으로는 시집와서 배운 부분이 많지요. 돌아가신 시할머니에게 배운 게 가장 크고 시고모님들에게도 많이 배웠고요.”
‘소민전골’도 마찬가지. 시할머니가 시할아버지에게 차려낸 밥상이 바로 ‘소민전골’의 시작이다. 가정 음식을 두고 이름을 붙였을 리는 없다. 면면히 내려오는 반가의 밥상을 그대로 차려냈다. 끼니마다 따뜻한 밥을 차려내는 것은 물론이고 평범한 식재료 하나도 정성을 기울여 만졌다.
‘미마지’의 문을 열고 오래지 않아 도올 김용옥 선생이 ‘미마지’에 들렀다. 도올이 남긴 말이 재미있다. “이게 무슨 ‘농가맛집’이야? 반가맛집이지.”
도영미 대표가 시할머니에게 배운 것 중 으뜸은 ‘음식을 먹는 이를 위한 마음가짐’이다. 육포(肉脯)는 이젠 사라진 음식이다. 가정에서 육포를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공장제 육포를 사용한다. 시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남편을 위하여 육포를 직접 만들었다. 송홧가루가 들어간 송화다식(松花茶食)도 마찬가지. 일일이 송화를 구해서 손질하고 송화다식을 만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드시는 분이 좋아하니까 만든다”였다.
진귀한 재료를 구하고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음식은 장맛이다. 음식은 주재료와 장이 어울리면 좋은 맛을 낸다. 제대로 된 맛이다.
시할머니 고 김선호 씨는 반가 출신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제법 넉넉했던 살림살이다. 손이 가는 음식인 전골이나 송화다식, 육포 등을 일상으로 마련했다. 도영미 대표는, 음식, 음식 솜씨, 음식 만드는 마음가짐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미마지’는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음식을 제대로 대접하자면 아무래도 며칠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당일 식사를 편하게 할 수 있지요. 예약 없이 오면 자리가 있더라도 식사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으니까 식사가 불가능하지요. 일본 측의 카탈로그에도 그런 내용이 적혀 있으니까 반드시 예약하고 옵니다. 국내 손님들도 마찬가집니다. 이젠 모두 예약을 하고 오지요. 식사 준비하는 이들도 스케줄을 정해서 식사를 준비할 수 있으니까 편하고, 그게 손님들 식탁에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편하게 준비한 음식은 드시는 분들도 편하지요.”
“어느 덧 큰 아이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별에 관심이 많아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와서 , ‘미마지’ 일을 돕습니다. 든든하지요.”
특별한 바람은 없다. 고등학생 단체들이 많이 찾는다. 견학 실습 팀들이다. 이들에게 , 농기구 전시실을 보여주고 단아한 우리 음식을 보여주고 싶다. 마치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시할아버지를 섬기셨 듯, 장맛이 살아있는 음식으로 ‘미마지’ ‘공주민속’을 찾는 이들을 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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