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림 한정선 개인전 ‘야생의 사고: 두 번째 이야기’…...4월 12∼18일, 백악미술관

'귀갓길' 아크릴, 캔버스, 2017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되거나 삶을 둘러싼 구조가 너무 견고해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무미건조하게 이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욱이 이러한 삶에 예속됐음에도 이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운명을 고달프게 짊어지고 가는 이들도 상당하다.

왜일까? 박제된 삶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벽이 너무 높아서일까, 아니면 일부 불편하고 자존이 상처를 입더라도 견딜만하다고 자위하는 것인지. 자본주의적 일상은 그만큼 달콤하다고 강변하는 것인가.

그러나 한 발 물러서 자신을 돌아보고 본질로 돌아가면 결국 개인에 원인이 있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부당하게 삶을 옥죄는 것에 맞서는 저항, 생래적 야성(野性)을 잃었거나 작동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을.

해림(海林) 한정선 작가의 개인전 ‘야생의 사고 - 두 번째 이야기’는 현대인의 삶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실존적 야성을 상기시킨다.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12일 개관한 전시에서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정글 속에서 하루하루 생존해 나가면서 지속적으로 마모되는, 피로하고 무기력한, 그리하여 길들여진 인간 군상을 ‘늑대의 시선’으로 우화적 표현 방식을 빌려 그려내고 있다.

전시명 ‘야생의 사고’는 프랑스 문화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의 동명 저서에서 차용했다. 그에 따르면 “야생의 사고란 야만인의 사고도 아니고 미개인의 사고도 아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재배종화되거나 가축화된 사고와도 다른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의 사고다.”

'터널을 지날 때' 아크릴, 캔버스. 2018
작가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축화되었다고 본다. 자신들이 만든 제도와 규범과 조건들에 스스로 묶이고, 갇히고, 강제 당하고, 그에 맞는 사람으로 제작되어진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런 사람들을 “이 세상 사물들을 비싼 값에 사고팔고 옮겨주는 일을 하면서도 주인이 주는 마른 짚을 받아먹고 달가워하는 당나귀에 다름이 아니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작가의 작품에는 대부분 늑대가 늘 등장하는데, 이 늑대는 당나귀와는 대척점에 있다. 작가에게 ‘늑대’는 야생적 사고의 상징적인 동물이다. 절대로 가축이 될 수 없는, 즉 길들여지지 않는 존재가 바로 ‘늑대’다.

작가의 작품에서 늑대는 자본주의 세계의 일상성에 길들여 신성과 신화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남루한 순간들을 응시한다. 그래서 작가는 “내 그림에서 늑대는 저항정신이며, 삶을 성찰하는 눈동자”라고 말한다. 늑대는 지하철뿐만 아니라 옷장에서도, 거실의 책장에서도, 비좁은 고시원 등 일상의 곳곳에 존재한다.

소설가 한승원은 이번 전시 서문에서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 정글세상 속에서 그녀의 그림은 외롭다. 그녀의 그림은 시장의 거래질서를 도발적으로 고집스럽게 외면하는, 아득한 신화 속에서 당나귀를 끌고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생명력 왕성한 늑대소녀의 풍경 해석하기다. 그것은 슬픈 눈으로 냉엄하게 세상 응시하기이다” 라고 평했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가축화된 현대인들에게 자신들이 원천적으로 지녔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무엇 때문에 존귀함을 잃어버렸고 자신의 존엄이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그것을 어디서 되찾아 와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작품 속 늑대에 다가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4월 18일까지 전시. 02—734-4205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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