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사상이 보인다고 했던가. 빈 책장이나 책이 꽂혀 있는가 하면 여기저기 놓여있는 것을 따로 찍어 중첩시킨 화면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겹치기만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줄이기도 더 키우기도 하고 선명하게 또는 흐리게 보이도록 의도성을 부여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것과 또 그 반대의 것들을 선별 할 수 없듯이 과정엔 무의식의 흔적들이 개입되기도 한다. 작가는 한 장면에 전체적인 책 내용이나 혹은 페이지의 주체인 사람의 철학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중첩된 이미지는 기억과 흔적의 메타포가 되어 심상(心像)으로 들어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사유적인 자국들을 녹여내게 되었을까. “2002년에 암이 발병했었는데 큰 병이 있으면 그것이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당시 취미가 책 읽는 것이었는데 인생을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들을 버렸었다. 그러다 운 좋게 회복되었다. 어느 날, 전쟁처럼 지나간 삶의 과정을 한 장면에 담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는데 그것이 ‘책장’시리즈였다.”
억겁시간의 숨 현대적 미감
사진가 박찬우는 서울예술대 사진과를 졸업했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하여 2013년 다소 늦은 첫 개인전과 두 번째 연속으로 ‘돌(Stone)’시리즈를 선보였다. 한국의 산하에 있는 돌을 채집하고 수조에 얹어 돌과 물의 공간감이 이뤄내는 미묘한 간극의 형상성을 렌즈에 포착해 냈다.
유구한 세월을 인류와 함께해 온 ‘돌’이라는 우주본원의 자연세계를 작품에 담아 낸 것이다. 이는 담박(淡泊)하면서도 억겁시간의 숨이 축적된 현대적인 미감으로 주목받으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Engram(기억흔적)’초대개인전은 작가와 줄곧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JJ중정갤러리에서 4월14일 오픈하여 5월12일까지 열리고 있다. 1~2층에 걸쳐 책과 책장, 돌을 비롯해 그릇, 자개장롱 등으로 소재를 확장한 70여점을 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 장시간 인터뷰 한 그에게 사진가의 길에 대한 소회를 물어 보았다. “병과 사투를 벌였던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많은 욕심이 없다. 작업시간만큼은 온전히 자기를 만난다고 믿는다. 그 순간이 재미있고 즐거워 빠져들게 된다.”
권동철 @hankooki.com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