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이혜경‥‘恨’기획전, 5월 29일~6월 5일, 갤러리M

'律-노래', 91×72.8㎝ 장지에 혼합재료, 2014
“밤새도록 눈이 내렸고 아침까지 계속 되었다. 오후에 다시 소나기구름이 덮쳐오기 전까지 몇 시간 동안이나마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 무렵엔 신설이 45㎝나 쌓였다. 지금은 저녁7시, 다시 눈이 내린다. 정오쯤에 설동을 파기시작해서 장비가 다 들어갈 만큼 넓게 완성했다. 상단 벽의 신설이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을 보아서 내일은 날씨가 좋아질 것이 분명해 일찍 출발할 수 있으리라.”<파미르-폭풍과 슬픔, 로버트 크래이크(Robert W. Craig)著, 성혜숙 옮김, 수문출판사 刊>

여인들이 온 정성을 다하여 힘차게 춤을 춘다. 화면 한가운데 아기는 마치 수호신 같이 깨끗한 에너지의 역할을 하며 기운을 북돋운다. 매번 반복되는 것이 일상의 현실이라지만 그러나 그 속엔 변화가 있듯이 배경은 꿈을 향한 발돋움의 호흡들로 흥겹다.

“6년 전, 우연히 건강검진을 받다가 암세포를 알게 된 이후 이미 내 삶을 한번 정리했다. 그즈음 세월호 참사와 시리아난민소년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들은 그 무엇이 되어 내 맘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심연', 72.8×91㎝ 장지에 템페라, 2018
권력이라는 욕망에 지배되고 희생된 사람들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낀 것일까. 노란리본을 휘감은 뿌리가 없는 꽃과 아이들 노래는 가랑비처럼 가슴 저미는 연민에 젖어들게 한다. 그렇게 미약한 힘이지만 여인들이, 아이들의 춤이 어우러지며 위로와 치유의 춤판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항암치료과정에서 내가 너무 허약한 체질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기억 속 내 몸은 그렇지 않았다. 거기서 오는 갈등, 기억의 조각들….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 병마를 이겨내기 위해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손과 발끝 온 신경을 집중하며 한발씩 오른다. 나와의 싸움이 치열 할수록 희망이 되고 그렇게 조금씩 내딛으며 삶의 소중함을 각성한다. 이를 이번 작업에 녹여내려 했다.”

그림은 내 삶 자체

이혜경 작가는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및 ​중국베이징 중앙미술대학 수묵인물과 석사졸업 했다. ​한중서법문화예술대전,​ 홍콩밀레니엄공모전, The Paris Arts Collection 등에서 수상했다. 2009년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에서 ‘사람만 그린 작품’을 선보이며 첫 개인전을 가졌다.

이듬해 갤러리 온(On)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업들을 발표했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을 그렸다면 이 전시에선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어렵고 곤란한 상황들에 처한 타인의 마음을 공유하게 되고 작가적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아를 깊게 응시하게 되었는데 그런 인식들이 작품에 반영되었다.”

이혜경(李惠景) 작가
2015년 정수화랑 전시에서는 꽃이 등장하는데 이 작업은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작업은 장지나 먹, 붓, 표현방식 등 동양화 전통재료에 서양화의 계란을 섞어 쓰는 템페라(tempera)를 응용해 화폭에 즐겨 운용한다. 이번 서울 종로구 인사4길, ‘갤러리M(엠)’기획전은 5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열린다.

한편 서울 약수역 인근 찻집에서 7년 만에 작가와 만나 그동안 큰 변화를 겪은 이야기 등을 나누며 인터뷰했다. ‘화가의 길’에 대한 생각을 들어 보았다.

“암벽을 오르려면 콩알만 한 돌출이라도 딛고 일어서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 그렇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것처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나에게 삶 그 자체다.”

권동철 @hankooki.com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