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강요배‥‘메멘토, 동백’개인전2부, 6월22~7월15일, 학고재 갤러리

천명(天鳴), 162×250㎝ 캔버스에 아크릴릭, 1991.
“눈이 하도 부셔서 감으니까 시체는 운동장 복판을 비우고 내 눈 속으로 툭 튀어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건 눈 안에서 푸른 팥벌레처럼 꿈틀꿈틀 움직였다. 눈알이 맵고 시렸다.…나는 또 꾸중을 들을까봐서 얼른 교문 앞을 떠났지만, 그 불탄 송장은 그때 나의 눈 망막에 아주 철인(鐵印)으로 새겨져버렸던 거였다. 사람들은 그 송장이 너무 타버려서 누군지 통 알아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게 내 아버지라고 귀띔해주는 사람도 물론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그게 아버지라고 생각하게 돼 버렸나?”<순이 삼촌, 현기영 著, 창비 刊>

대지는 시커멓게 타버렸고 하늘과 바다는 온통 피로 물들었다. 서귀포시 표선면 동남쪽 피물이 든 ‘붉은 바다’, 표선백사장. 제주4ㆍ3은 1947년 3ㆍ1절 기념행사에서 경찰발포로 민간인이 숨진 것에서 시발됐다.

48년 5ㆍ10총선거 찬반을 놓고 전국적 무력충돌이 빈번한 가운데 제주는 선거를 거부한 유일한 지역으로 정부에겐 도전집단, 철수를 앞둔 미군에게는 세계질서의 장애물로 여겨진다. 그해 11월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총격과 방화로 중산간마을을 불태웠다.

붉은 바다, 97×250㎝, 1991.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의 대표적 사례지역이기도 한 제주시 조천읍 동쪽 북촌마을은 49년 1월 불가항력의 남녀노소 300여 명이 한날 한 시에 희생 되었다.

“내가 태어나기 4년 전 오랜 식민지 백성이 해방의 깃발을 휘날리던 날, 저 태평양을 건너와 이 작은 섬을 후려치고 삼키었으니 이 피의 바람이 바로 4ㆍ3이다. 그리고 독한 바람에 맞서 그것을 갈라친 저항이 4ㆍ3이다. 역사의 맑은 바람을 쏘여 내 가슴속 응어리의 정체를 밝혀보고자 시도한 것이 제주민중항쟁사 연작 그림이다.”

진정 삶이란 무엇인가

강요배 작가(KANG YO BAE)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 회화과 졸업했다. 92년 ‘제주민중항쟁사’를 학고재 갤러리, 제주 세종갤러리, 대구 단공갤러리 등 순회 전시로 제주4·3의 실체를 바로 알리고 역사화(歷史畵)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후 2008년 제주4ㆍ3평화기념관 개관기념특별전을 가졌다.

강요배 화백.<사진=학고재>
이번 ‘메멘토, 동백(Memento, Camellia)’개인전2부는 회화, 드로잉6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아 6월22~7월 15일까지 학고재 전관에서 작품세계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도록 두 파트로 배열했다.

△동백꽃 지다=1989년~92년까지 그린 연작50여 점. △동백 이후=‘불인(不仁,국립현대미술관소장)’, ‘버트 하디(Bert Hardy) 사진에 대한 경의’ 등 92~2017년까지 제작한 대작(大作)10여 점을 선보이는데 특히 올해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전시의미가 더욱 크다.

한편 제주4ㆍ3은 80년대 후반 진상규명노력이 활기를 띠어 2000년 ‘제주4ㆍ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정ㆍ공포, 2003년 ‘제주4ㆍ3사건 진상조사보고서’확정, 2014년 ‘4ㆍ3희생자 추념일’로 지정되었다.

“30대 후반에 ‘혹, 내 생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면 내가 꼭 해야만 할 일은 무엇인가?’ 그때에 이르러서야 나는 ‘4ㆍ3’을 생각했다. 알 수 없는 공포의 장막 저 너머에 있는 내 고향 제주, 그 섬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폭압적 살인기제의 작동, 매몰협박감시에 의한 인멸과 봉인, 살아남은 사람들의 울분과 눈물 그리고 침묵. 나약하고 무력한 내가 그 죽음들을 생각하고 드러낼 수 있다면….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걷어 내는 일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권동철 @hankooki.com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