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상표…‘존재론적 물음으로서 얼굴성 II’개인전, 7월 16일 ~8월 6일, 윤 갤러리

자화상, 72.7×60.6㎝(each) oil on canvas, 2018
“나를 얼굴로서 존재시키는 타자의 얼굴 자체는 나에게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의 얼굴이 불러낸 것이다. 마찬가지로 타자의 얼굴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 내 얼굴을 지금 불러내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는 서로 보이지 않는 자기얼굴의 이러한 얼굴을 마주하도록 불러낸다. 이러한 소환 가운데 나는 ‘나’가 된다. 얼굴이란 실로 타자가 선물로 보내 준 것이다.<사람의 현상학, 와시다 기요카즈(鷲田淸一)지음, 김경원 옮김, 문학동네 刊>

‘나’의 초상(肖像)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격렬한 꿈틀거림이 전해온다. 낯섦을 응시하는 눈빛,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뒤 헝클어진 머릿결에 드리운 윤기의 평온, 혹은 아무런 생각이 없음의 적막에 젖어드는 기묘한 기운….

서예와 검도로 단련된 작가는 속필로 단숨에 그려낸다. 이성을 무력화하고픈 욕구인가. 강박적으로 집착한 듯 틈을 주지 않고 느끼는 대로 즉발로 붓을 휘두른다.

“충돌하는 자아가 튕겨 나올 듯 검도하듯 붓을 캔버스에 때린다”는 그의 말처럼 선은 굵고 거칠고 강하다. 스케치를 하지 않은 화면 위, 스무 번 정도까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무수한 얼굴이 겹겹으로 집적된다. 선과 색을 칠하면서 동시에 선과 색을 찾아가며 마침내 전면에 ‘그 얼굴’이 드러나는 것이다.

자화상, 72.7×60.6㎝, oil on canvas, 2018
“물질성을 배재할 수 없지만 기호나 상징체계로서의 얼굴이 관심사다. 나는 그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내가 나의 얼굴을 그리는 순간 그것은 이미 내 얼굴이 아니다. 왜냐하면 규정되는 순간 얼굴에 대한 수많은 다른 규정성들이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얼굴이란 ‘얼굴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다름 아니다. 그 자체로서 얼굴성에 대해 사유하고 명상한 단상들이 그림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그림은 여전히 연구노트다.”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의 기쁨

김상표 작가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석ㆍ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남 진주시 경남과학기술대학교(경남과기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작업이 심화되어 갈수록 너무 급해져 왼손으로 물감을 짜고 그것을 바로 붓에 찍어서 캔버스에 바른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물감이 지나치게 두껍게 발리거나 덩어리가 그대로 캔버스에 남아 있는 경우가 빈번하다. 날것의 감각이 형상에 그대로 생생하게 묻어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몰입의 시간이다. 감각에 의해 그려지고 내 안의 무엇이 해소된 것 같다. 인간의, 나의 실존문제를 얼굴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 ‘존재론적 물음으로서 얼굴성 II’ 세 번째 개인전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윤 갤러리에서 7월 16일 오픈해 8월 6일까지 51개 자화상으로 전시 중이다.

김상표(金相杓) 작가
그는 소통이 범람하는 시대에 소통의 부재라며 잠시 침울해 했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 해체와 융합패러다임 선상에서 ‘자화상’을 통해 나선 시간의 길에서 무엇과 해후한 것일까.

“코드화된 인간의 얼굴이 아닌 본래적 삶을 살아가는 것을 그리려 했다. 때문에 나를 탐구한 것이 아니라 얼굴을 탐사한 것이다. 얼굴을 해체한다는 것은 수많은 생명체로 탄생한다는 것이다. 한 송이 꽃으로 또 굽이굽이 돌아가는 무념의 강물처럼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 다다른 초상을 만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그림의 방식으로 실험해 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피력했다.

한편 전시장에서 장시간 인터뷰 한 그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 엄숙주의였다. 그림을 통해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권동철 @hankooki.com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