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찍는 듯 필연에 가까운 화면의 기본은 점(點)이 들어가 있다. 그렇게 하면서 전체적으로 수묵의 번짐, 공간성을 최대한 살려내고 있는데 선을 긋고, 점을 찍는 감정은 한결같다.
이는 언뜻 우연효과로 보일 수 있지만 치열한 노동과 정신이 녹아든 것으로 작가는 “미련한 작업”이라며 웃어 보였다. 화면이 시각적으로 평면적이거나 얇아 보이지 않는 것은 한지뒷면에 물감을 여러 겹 덧칠한 배채법(背彩法) 위에 수없이 선을 그은 때문이다. 한지를 뜰 때 생기는 미세한 숨구멍으로 계속 물감을 내뱉게 해 작업하기 때문에 뒤쪽이 오히려 더 진하다.
“추상을 하지만 신비함에 대해 사유하고, 이성적이지만 감성을 펴놓고 간접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을 지향한다. 우리말 ‘볼그스름하다’처럼, 드러낼 듯 말 듯 또 우유부단한 것 같지만 살짝 가리면서 느껴지는 폭과 깊이의 여지를 건네는 작업이다.”
“평소 서예가로서 작가정신이 굉장히 좋으셨던 분이시다. 뭔가 합작을 한다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하나하나 볼 때는 반복되는 작업이지만 이들을 붙일 때 점과 선을 살릴 것인가 하는 등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기도하는 마음의 수행성이 동반되는 것이다.
“오래도록 ‘관조(觀照)’명제를 붙여왔다. 그것은 본질을 응시하려는 영혼의 시선이다. 사물의 유한세계를 넘어 추상적 본질에 가 닿으려는 소망을 표현한 것으로 몸의 물리적 시선이 아닌, 내면적 시선을 의미한다. 존재의 내면을 통해 걸러진 시간과 정서가 버무려져 생명력 가득한 조형의식으로 바뀌는 순간이 가 닿는….”
그림 선택한 것은 은총
송수련(SONG SOO RYUN)한지작가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동양화 전공 및 성신여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상대학교, 중앙대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단색화 선각자 고(故) 권영우, 안상철 화백이 스승으로 대학시절에 지도받았다.
1976년 문예진흥원미술회관(82,87)에서 한지채색작업으로 첫 개인전을 가졌고 79년 선화랑(84), 91년 동산방화랑, 2004년 15회 석주미술상 수상기념 대한민국예술원미술관, 2009년 금호미술관에서 1~3층 대형전시 등을 가졌다.
이번 스물일곱 번째 ‘내적시선-달에 닮다’기획초대개인전은 8월 1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동덕아트갤러리’에서 2016년부터 작업한 100~300호 대작20점을 포함하여 총 30여점을 선보인다.
한편 인사동 조용한 찻집에서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준 화업45년 송수련 작가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소회를 청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내내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그려왔다. 그림을 선택한 것은 은총(恩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업할 때 도전의식을 가지고 하는 편인데 이번엔 처음 두려운 생각까지 들었다.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그림이 치유와 위안이 되어주었다. 나는 화실을 나올 때마다 문에 대고 늘 ‘감사 합니다!’ 인사한다.”
권동철 @hankooki.com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