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라이프

쪽잠의 행복한 꿈 내 어머니의 삶

닥종이회화 이귀님‥‘제14회 2018한국미술상’수상기념展, 12월5~14일, 한국미술센터
  • 그녀가 꾸는 꿈은, 165×95㎝ 닥종이에 커피와 복합재료, 2018
“너무 허름해서 더 이상 쓸 수 없다 그런데 왜 젊은 날 그리도 허름한 세상을 찾아 지금 이 늙은 나이에 허름한 산간의 초라한 집을 찾아 다닐까 왜? 모른다 그런데 왜, 왜, 왜? 죽은 뒤에도 죽을 때도 여전히 찾아 헤멜 것이다 허름 허름 허름 허허허 내 이름이겠지, 본래의.”<김지하, 흰 그늘 시집 中 허름, 작가刊>

백열등 불빛 아래 부옇게 속이 들여다보이는 초겨울 어스름 저녁. 무질서한 진눈개비가 허공에 흩어지며 덜거덩덜거덩 오래된 얇은 창문을 자꾸만 두드린다. 작품배경은 전남 목포시 동명동 어시장입구에 있는 어물상회다. 눈이 동그란 간재미 그 뒤에 딱돔, 박대 그리고 걸려있는 마른명태 그림자가 문틈으로 들어 온 바람에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다.

당신 딸이 떠준 털모자 사이로 삐져나온 백발의 어머니! 겨울에도 얼음에 재워놓아야 하는 생물생선의 비린내 젖은 목장갑 속 손마디 굳은살이 아름드리 나무도마의 결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을 드러낸다.

“50년은 족히 어물장사를 한 생선장수 어머니가 저녁장거리 손님들이 돌아간 뒤, 남은 생선 앞에서 축축하게 불어있어 손 그대로 곤하게 졸고 계신다. 자식들을 위해서 고생을 하시는 노고를 생각하며 쪽잠을 자는 동안 당신만을 위한 행복한 꿈을 만나길 바랐다.”

  • 일, 52×48㎝
모성애의 인본리얼리즘

작가는 캔버스 대신 직접 만들어서 작업할 수 있는 것을 연구하다 한지원료인 닥종이를 만난다.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한지 뜨는 작업에서 힌트를 얻어 직접 제작하게 된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국 원하는 두께와 모양을 만들기 위해 닥종이를 두들겨서 넓게 펴 말려 그 위에 작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채로 쳐냈을 때, 서로 엉겨 붙으면서 종이 자체가 스스로 질감을 형성해 내는데 그래서 응고된 닥종이 바탕은 매끈하듯 규칙적이지 않다. 화면 테두리가 구불구불한 것도 그런 과정 때문이다.

“종이가 순수재료인데 채색도 인공적이지 않은 것을 얻고 싶었다. 여러 물성을 찾다가 커피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채색의 상당부분은 물이 증발한 고체화된 에스프레소 원액으로 그린다.”

  • 화가 이귀님
이귀님 작가는 광주예고, 전남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서울, 파리, 동경, 뉴욕, 베를린, 상해 등 국내외 초대개인전을 가졌다. 이번 ‘제14회 2018한국미술상’수상 기념전(展)은 12월 5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국미술센터에서 열흘간 열린다.

이일영 관장은 “신성한 삶의 흔적을 추슬러 자연과 생명 그리고 삶이라는 구조적 실체들을 독자적 언어로 함축한 한편의 시와 같다. 남도여인의 강인하고 질박한 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리얼리즘은 헌신적 모성애의 인본주의 표상”이라고 선정배경을 밝혔다.

한편, 작가는 무안이나 신안 등지 갯벌에 가 에스키스 한다. 조개를 캐내거나 낙지잡이를 하는 연로한 어촌여인을 만난다며 이렇게 전했다. “깊은 곳은 못 들어가고 얕은 뻘에서 잘 미끄러지는 빨간 대야를 허리에 묶어 고된 노동을 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 저 분들의 일을 대신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앞으로 작업 소재나 방향은 확장되겠지만 ‘어머니와 바다’는 내 화업의 근본이다. 사명감으로 여긴다.”

권동철 @ham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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