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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박종용 개인전

몸과 혼으로 창조한 ‘생명예술’에 관객 줄이어…화단에 신선한 감흥
진정한 예술과 예술가의 운명ㆍ삶의 가치 일깨워
  • 박종용 화백
지난 1월 19 ∼ 27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린 ‘박종용 展’은 30년 역사의 한가람미술관 개관 이래 개막전 최다 관람객이 참석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시기간 내내 수많은 관람객이 방문하여 뜨거운 갈채를 보냄으로써 전시기록을 새로 쓰고,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두면서 예술가의 사명을 일깨우는 등, 한국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풍상과 고난으로 얼룩진 예술가(畵家)의 길로 접어들다

박종용은 어린 시절부터 서예가와 화가이며 부산 송도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형 종헌과 함께 주말 아버지가 돌아와 사랑채에서 그림을 그릴 때 옆에서 그림을 그리곤 하였다. 그의 기억으로는 8살 때부터 아버지 곁에서 스케치하고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회고된다. 이후 55년 전인 12살 때 화투를 그려 보여주자,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림신동’이란 소리를 듣게 되었고, 이에 용기를 얻어 대화가(大畵家)가 될 것을 결심하면서 험난한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고향 함안, 마산 등지에서 산천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던 중, 좀 더 넓은 세상에서 그림을 그리고자 결심하고 20세에 상경해 인사동 조계사 건너편에 몇 사람과 같이 화실을 마련하고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조계사의 단청을 보고 본격적으로 불화를 시작하였으며, 삼각지에서 미군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또한 시간이 날 때 마다 청계천 만물시장을 찾아다니면서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오는 각종 그림과 골동들을 관찰하여 자신의 그림으로 체화하면서 스스로를 단련시켜나갔다. 누구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박종용의 미술은 이렇게 형성되고 진화되어 간 것이다.

  • 1월 19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실에서 개인전을 연 박종용 화백(백곡미술관 관장)이 개막 행사에서 참관객들에게 인사말을 하는 모습.(사진=문화저널21)
군 복무 중이던 23살 때 교사로 재직 중이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타계하여 제대 후, 6남매의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해야 했기에 부득이 상업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인사동, 삼각지 화실에서 초상화, 산수화, 극장 간판, 만화 등 각종 상업용 그림을 그려야 했다. 어머니와 형제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눈물을 흘려가며 손발이 벗겨지도록 그리고 또 그린 것이다.

설악의 아틀리에에서 영원을 갈구하는 ‘생명예술’의 길을 찾다

70∼80년대 생계유지를 위한 박종용의 화가로서의 광폭 행보는 자연스럽게 화단에 알려져 내고(乃古) 박생광, 풍곡(豊谷) 성재휴, 남농(南農) 허건, 운보(雲甫) 김기창 화백 등 당대 거장들이 그의 화실이나 전시장을 찾아와 격려하거나 자신의 화실에 초대하여 같이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박생광 화백이 그를 찾아와 “무릎 팍이 닳도록 그려라. 대성한다”라고 격려하였고, 허건 화백은 박종용의 호랑이 그림에 소나무를 그려 주면서 ‘필력이 최고다’라고 칭찬하였으며, 김기창 화백은 거장들의 합작도 마무리를 박종용에게 맡긴 후, 등을 두드려주곤 하였다. 성재휴 화백은 등산을 같이 다니면서 “참으로 대단한 필력이다. 앞으로 최고 경지에 이를 것 같다”라고 격찬하면서 더욱 화업에 정진할 것으로 부탁하기도 하였다. 손발이 벗겨지는 등, 눈물겨운 노력으로 70∼80년대 박종용은 인물(초상)화, 정물, 산수화, 영묘화, 각종 불화 등 각양각색의 그림을 능수능란하게 묘사하거나 재현하여 당대의 거장들로부터 ‘최고의 필력이다’라는 칭찬과 귀여움을 받으면서 힘겨운 화업(畵業) 생활을 지속하였다.

또한 70년대 후반 평생 후원자인 백공 정상림 변호사(당시 현직 검사)를 만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연히 전시장에서 만난 당시 현직 검사였던 정상림은 박종용의 그림에 매료되어 많은 그림을 수시로 매입해 주기도 하였다. 풍부한 예술 식견과 뛰어난 심미안으로 많은 오랫동안 많은 명화를 수집한 백공 정상림은 퇴직 후, 내설악 백담사 인근 수 만평에 이르는 자신의 땅에 미술관을 건립하여 후대의 문화자산으로 남길 것을 결심하고, 2006년부터 미술관 건립을 시작하면서 이 일을 박종용에게 맡긴다. 쉽게 예상되던 미술관 건립 등은 주변의 반대 등으로 4년간에 걸쳐 서울과 내설악을 수없이 오가면서 2010년에야 백공미술관과 아틀리에를 어렵게 완공시켰다.

미술관과 아틀리에 완공 후 박종용은 수시로 설악의 아틀리에서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쳐다보면서 그토록 어려웠던 시절에 그렸던 수많은 그림들이 산천에 흩어져 유목(流木)처럼 사라져 버린 안타까움에 상심하며 생명을 유지하면서 영원이 살아 숨 쉬는 ‘생명예술’을 갈구하였다. 밤마다 식은땀을 흘려가며 몸부림치면서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무한을 향한 ‘생명예술’을 갈구하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 박종용 화백의 전시는 한가람미술관 개관 이래 개막전 최대의 관람객이 찾았고, 전시기간 내내 문화계, 정계 인사 등 수많은 방문객이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와 대화를 나눴다.
수행과 노동으로 잉태된 점의 미학 ‘결’을 탄생시키다

박종용은 영원히 살아 쉼 쉬는 ‘생명예술’을 갈구하는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하여 밤마다 찬란히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쳐다보면서 사물의 근원(우주)에 대한 신비와 경외감에 휩싸이면서 이를 물성언어로 표현하고픈 갈망에 몸부림쳤다. 뜨거운 예술의 용광로 속에서 새로운 예술의 창조를 위하여 엄숙한 수행과 힘든 노동에 스스로를 던져버렸다.

이후 박종용은 10여년에 걸쳐 자연이 생성되는 원리를 찾아 이를 물성 언어로 풀어내기 위하여 모진 수행과 노동을 거듭하였다. 경계를 넘기 위한 감천을 향한 지성의 노력 과정에서 땀방울로 얼룩진 ‘결’로 서서히 형상화 되었다. 나무,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를 일컫는 ‘결’은 박종용 예술에 있어 우주의 운행원리와 사물의 본질을 뜻하는 것으로, 이를 형상화하기 위한 과정에서 크고 작은 ‘결’의 오브제들이 저절로 탄생한 것이다. 마대, 흙, 나무, 돌 등으로 연출되어 공간, 평면, 설치예술이 환상적으로 교합하는 ‘결’은 사물의 근원에 대한 탐험이며, 영원의 갈구하는 ‘생명예술’의 또 다른 표현이자, 시간(역사)의 흔적이며 노동으로 잉태된 ‘점의 미학’이다.

침묵수행과 노동을 통하여 자연과 교감하면서 사물의 이치에 근접하려는 ‘결’은 우주의 원리가 작품 속에서 변화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흰색, 회백색, 청색, 붉음으로 점철되고 덧칠된 흙에서 천년고찰과 같은 원로한 선원의 미를 연상케 하면서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오브제들이 생명을 유지에 주길 바라는 갈망과, 새로운 질서를 찾기 위하여 외치는 예리한 긴장감, 대지의 균열 속에 흘러가는 시간의 흔적들이 남기는 안타까움 등이 절묘하게 공존하면서 명상과 신비의 판타지아가 울려퍼지고 있다.

작가 박종용은 ‘결’의 탄생과 관련하여 “눈물의 시기에 창작된 수많은 작품들이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 안타까워 살아 숨 쉬는 작품을 갈망하면서 10여 년 간 백공미술관 아틀리에서 사물의 근원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한 새로운 추상예술 창작에 땀을 흘리고 또 흘렸다. 이러한 노동의 과정에 오브제들이 저절로 형상화 되었다. ‘결(무제)’로 명명된 오브제들은 무어라 말할 수 없으며 땀의 결정체 일 뿐이다. 세월을 이겨내면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지길 바랄 뿐이다.” 면서 힘든 작업과정과 바램을 담담하게 전달하였다.

‘박종용 전시회’가 남긴 예술사적 의미

10여 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공간, 평면, 설치로 구성된 박종용의 미니멀아트적인 새로운 추상 표현주의 작품 ‘결’이 2019년 1월 19일 오후 3시경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모습을 드러내자 500여명이 웅성거리면서 새로운 예술에 대하여 갈채를 보내었다. 오픈식에 30년 한가람미술관 개관 이래 최대 관람객들이 모였으며, 다음날 1,000여명의 방문을 비롯해 전시기간(19∼27) 내내 수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하여 명상에 잠겨 작품의 의미를 부여하거나, 작가와 대담을 하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무엇이 수많은 관람객들을 전시장으로 안내하였으며, 기존 미술전시 기록을 바꾸는 기록적인 현상은 무엇 때문에 생겨났으며, ‘박종용 전시회’가 남긴 예술사적 의미와 한국 화단에 끼칠 영향은 무엇인가?

쉬이 볼 수 없는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박종용의 새로운 추상미술 작품전이 영감의 향연을 갈망하는 수많은 예술 애호인 들을 자연스럽게 한가람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리게 하였으며, 개막식 성황의 소문이 자연스럽게 유포됨으로써 전시기간 내내 연일 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해 새로운 예술에 갈채를 보낸 것이다. 그만큼 수많은 예술 애호인 들은 비바람 몰아치고, 눈보라 휘날려도 타는 목마름을 해소할 영감의 향연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젖줄은 영감의 향연인 것이다.

예상하지 못하였던 대성황은 흘린 땀에 대한 박수갈채이다. 작가 박종용은 새로운 예술세계 창조를 위해 사물의 본질과 무한을 향하여 구슬땀을 흘리고 또 흘렸다. 정말 노예처럼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갖가지 ‘결’ 들이 저절로 형상화 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작가의 투혼이 관람객들에게 아프게 전달되어 영감의 샘물을 자극하면서 박수갈채를 받게 만든 것이다.

차가운 겨울을 뜨거운 예술로 녹이면서 미술전시 기록을 갈아 치우는 등,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박종용 개인전’은 예술사적으로 여러 가지 함의를 남겼다. ‘예술의 존재의의’와 ‘예술은 감동’이라는 진리를 재확인 시키면서, ‘예술가의 운명’과 ‘예술가의 진정한 삶의 가치’를 온몸으로 보여 주여 잠든 예술가들의 영혼을 일깨우려는 등, 예술문화 발전을 위한 투사적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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