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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스의 감동단편 다이제스트] ② 운명과 숙명

살인자의 사주를 알아맞힌 도사님$ 살해당할 자신의 운명은 몰랐을까
  • 미노스 최민호 작가
이곳은 예약없이는 만날 수도 없는 사주의 명인이 있는 ‘관운정’. 예약을 했음에도 대기실에서 족히 1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시원하고 맑은 눈, 분명한 두 눈썹. 조각같은 콧날에 흰 이마.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고급진 양복과 허리 벨트. 준수하게 생긴 젊은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따끈한 중국차를 마시면서, 미동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들어오라는 시그널이 오자, 젊은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좁은 듯, 그러나 정갈한, 조명과 향불이 신비감을 더해주는 방이었다. 도사는 들어오는 젊은이를 유심히 살폈다. ‘차디찬 외모, 절제된 발걸음, 여유있는 표정, 외로움, 고뇌$’

범상한 상이 아니다. 젊은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 목례를 했다. 그러더니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흰 봉투를 꺼냈다. “도사님. 죄송하지만 오늘은 예약을 모두 취소하시고, 저에게만 집중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300만원입니다만$” 거만끼는 보이지 않았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 수성(水聲)의 깊은 음성이었다. 서늘한 카리스마가 엿보인다. 도사는 시중인을 불러 예약을 다 취소하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예의바르게 인사하는 젊은이를 실눈을 뜨고 다시 뜯어보았다. ‘일본인 피가 흐르나?’ 어딘가 사무라이 냄새도 난다. 도사는 메모지를 내놓았다. 생년월일과 주소를 적고 특별히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라는 주문이다. 그의 사주를 풀어보았다. ‘천을귀인(天乙貴人)’.

아주 귀한 사주다. 헌데 살(殺)이 끼었다. 도화살, 역마살이 보인다. 해석하기 어려운 사주였다. 살은 흉한 것이다. 특히 여성에게 이런 살이 보이면 망조(亡兆)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도화살, 역마살 없이 인기인이나 비즈니스는 성공하기 어렵다.

이 자는 여성들에게 인기도 많고, 해외출장도 많이 다니는 재벌집 자제라고 볼 만한 사주다. 그런데 아차, 백호대살(白虎大殺)이 엿보인다. 배신과 잔인성이 있는 성품이다. 잘 풀리면 재벌그룹의 회장이나 정치인, 못되면 조폭 두목이다. 면밀히 살폈다. 헌데, 부모를 잘 만났다. 좋은 사주다$ “혹시 궁금하신 일이?”

도사가 묻자, 젊은이는 조용히 입을 떼었다. “이 나라의 운명이 어떻습니까?” “$ $?”

“도사님은 나라의 운도 점치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엉뚱했지만 300만원을 내놓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천기를 누설해 달라는 것이렷다! “허허. 스케일이 작으시군요. 그 정도라면 3천만원은 내놓으시던가$” 젊은이는 웃지 않았다. “드릴만하면 드려야죠.”

“무엇이 궁금하시오? 전쟁? 대통령? 경제?” “대통령입니다. 누가 되겠습니까?” 곧 대선을 앞두고 있었다. 도사는 가만히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는 그 개인의 팔자겠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는 나라의 운입니다. 그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우리 같은 점쟁이도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개인운으로는요? 후보자 한사람, 한사람 짚어보면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운이 좋아야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올시다. 반대일 경우도 많습니다. 악운이라 대통령이 되는 경우지요. 평온한 삶을 살 사람이 왕이 되어 역사의 죄인이 되거나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지도 않소? 좋은 운이겠소?” “$ $”

“대원군은 아버지 묘소를 천하명당으로 알고 썼소이다. 맞았소이다. 훗날 아들이 황제가 되었으니 말이요. 고종말이외다. 하지만 고종은 평화롭게 살 팔자가 왕이 되고부터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소. 민비는 왜놈 깡패들에게 살해당하고 나라는 패망하고 신하들은 배신하고 백성은 종이 되고, 자기는 독살당하지 않았소? 좋은 것이겠소? 운이 나빠 왕이 된 것이요.” 젊은이는 단정했고 단호하게 말했다. 단념하지 않았다.

“아무튼 누군가 대통령이 되긴 될 것 아닙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는 젊은이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모른다고 하자니 도사의 체면이 있고, 말해 주자니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왜 이 문제를? 나는 대통령 후보자들 생년월일도 몰라요.” 도사가 결연하게 말했다. 젊은이가 품속에서 쪽지 한 장을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 운명과 숙명.
대통령 후보자들 생년월일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작심하고 온 젊은이였다. 도사는, “그런데 왜 알고 싶으신 거요? 최근 부도난 회사와 무슨 관계라도 있습니까?” 젊은이가 움찔했다. “그런 것도 사주에 나옵니까? 음$” 하는 수 없다는 듯 젊은이는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에 따라 우리 그룹의 사활이 걸려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기업을 일으켜 이제는 누구라도 알만한 글로벌 그룹이 된 것은 그 분의 사주팔자였겠지만, 당시의 대통령이 뒷받침을 해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습니다. 절박합니다. 어떤 이념과 정책을 가진 대통령이 되느냐가 향후 그룹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방향을 맞추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 아이템을 곧 론칭해야 합니다. 오래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도사는 눈을 지긋이 감았다.

‘그렇군. 이 녀석의 고뇌란 것이$회장자리 승계야. 새 아이템이 사느냐 죽느냐에 따라 후계자 결정도 되겠지$’ 도사의 숙고는 길었다. 대통령 후보자들의 사주를 머릿속에 다 그려 놓았다. 누군지는 나왔다. 그런데 이 녀석과의 관계는? 합(合)인가? 충(衝)인가?

상극이었다. 차 한잔을 천천히 마셨다. “당신과는 맞지 않을 분이 될 수도 있겠소.” 순간 젊은이의 양미간이 처연한 골을 이루었다. “누굽니까? 이 중에서?”

“그걸 말할 수는 없소. 우리에게도 천기는 천기니까$ 천벌이 있소이다.” 젊은이가 눈을 지긋이 감았다. “제발 말씀해주십시오. 3천만원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도사는 고개를 저었다. 거부였다. 젊은이가 도사를 바라보았다. 쪽지 맨 위에 있는 후보자를 가리키며 도사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사람입니까?” 도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이 사람입니까?” 쪽지에 있는 후보자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젊은이는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도사의 눈을 쏘아보았다.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례대로 내려가며 후보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젊은이의 눈동자는 필사적이었다. 마지막 후보자까지 짚은 후 스르르 눈을 내리 감았다. 젊은이는 달관한 스님처럼 눈을 감고 말했다.

“말씀해주시지 않는군요. 그러나 좋습니다. 알겠군요. 도사님의 눈빛에서$” 그리고는 눈을 번쩍 떴다. 도사는 흠칫했다. 살기!.

젊은이의 눈에 살기가 번갯불처럼 스쳐갔다. ‘아니, 이 자가$이 자가$’ 젊은이의 사주를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 빠르게 훑었다. 그것이었다. 그 알 수 없던 카리스마. 그것은 살인자의 사주였다. 한 사람을 죽이는 사주였다. 반대하는 대통령 후보에 대해 살의를 품고 있는 것이었다. 그 그룹의 파워라면 가능한 일이다. 제3국의 청부 살인자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대선 후보자들은 경호에 취약하다$도사는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지만, 애써 자제하였다. 젊은이는 도사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도사는 차 한잔을 젊은이에게 따라주었다. 차를 마신 후 젊은이가 물었다. “도사님. 사주라는 것이 얼마나 맞습니까? 100% 맞힙니까?” 도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가늘게 떨리는 듯도 했다. “아니오. 솔직히. 100%란 없지요.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도사님 본인 사주는 어떠셨나요? 평생을 지내 오시면서 본인 것은 정말 맞으시던가요? 이제까지?” 이 자는 나를 테스트하고 있다. 내 눈빛을 보고 누가 대통령이 될지 눈치 챈 녀석이다. 사주가 맞는다는 확신을 그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무서운 일을 저지를 것이다. 반드시$ 도사가 말했다.

“제 것이야 맞았지요. 밤낮 연구하고 보니까. 사주도 해석이 각양각색이니까. 하지만 남의 사주는 안 맞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어쩔 수 없지요..” 도사는 자리를 정리하고자 했다. 빨리 끝내야 한다. 젊은이는 점잖게,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말투로 말했다. “도사님. 저는 도사님 사주가 제발 맞기를 기원합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이 답답한 중생을 생각하면 도사님은 하늘이 내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미래를 알 수 있다면 백성들이 그렇게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부디 진실을 말해주십시오. 도사님. 하늘이 정하는 것이니 직업도 자기 뜻대로 택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운명은 도저히 바꿀 수 없습니까?”

도사에게 평생 쏟아져 왔던 질문이었다. 조심스러운 찬스였다.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요. 분수란 그릇을 말합니다. 분수를 넘으면 천벌이 내립니다. 도가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죽습니다. 사주란 분수를 보는 겁니다. 저는 사주보는 팔자예요. 제 팔자는 사주를 볼 때 명대로 삽니다. 다른 일을 넘보는 일은 그래서 절대로 안 합니다. 절대로$” 이 말이 젊은이에게 강력한 메시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쨌든 이 손님은 내보내야 한다. 아니면 자꾸 빨려 들어간다. “감사합니다.” 젊은이는 처음 올 때와 마찬가지로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오른쪽 포켓에서 수표책을 꺼냈다. “3천만원입니다.”

능숙하게 사인을 했다. “아닙니다, 아니예요. 그저 농담을$” 젊은이는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고 방을 나가 버렸다. 젊은이가 가고 나서 도사는 직원들을 불러 오늘 더 이상 손님을 받지 말라고 단단히 말했다. 쉬고 싶었다. 오한이 있는 듯 오싹 추우며 떨려 왔다. 직원들이 문단속을 하고 인사를 하고는 모두 퇴근하였다. 조금 안정이 되는 듯했다. 다시 차 한 잔을 마셨다. 차탁 뒤 방석에 몸을 뉘었다. 눈을 감았다. 어스름 해가 넘어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젊은이였다.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는 도사를 젊은이는 재빨리 단단한 양 무릎으로 제압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도사님. 운명은 어찌할 수 없나 봅니다. 당신은 내가 대선 후보자를 암살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밀을 안 유일한 사람. 당신을 살려둘 수가 없군요. 살인자$그것은 내 운명이겠지요. 그런데 당신 사주는 명대로 편히 죽는다고 하지 않았소. 그건 틀리는군요. 그렇게 틀리는 사주로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업보를 저질렀소. 당신이 내 손에 죽는 것은 그러한 업보에 대한 숙명이라고 생각하시오. 죽어 주셔야 되겠소. 내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국운도 국민이 바꿀 수 있어야지요$”

양 무릎과 두 팔로 목을 조여오는 젊은이의 힘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숨이 막히면서도, 도사의 머릿속에 한 줄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뿔싸. 네 놈이 네 놈이$내가 네 놈을 알았는데, 정작 나를 몰랐다니$내 운명이 이건 아닌데$ 네 사주는 한 사람밖에는 못 죽인다. 그런데, 그런데$그렇다면$?’ 깊은 회의와 좌절감이 더욱 목을 조여왔다.

고개를 툭! 떨구며 도사는 죽었다. 젊은이는 수표책을 말없이 포켓에 넣고 방을 나갔다.

● 미노스 최민호 작가 프로필

본명은 최민호,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했다.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에 이어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동경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 행정학 박사를 취득한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공직퇴임후 미노스라는 필명으로 작가로 변신해 단편집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딸이니까”를 출간해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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