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황규태‘픽셀 Pixel’개인전$ 아라리오갤러리 서울1삼청, 3월 7일~4월 21일

리학자 브라이스 디윗(Bryce Dewitt)은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우주의 모든 은하, 모든 별에서 양자적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우주는 수많은 복사본으로 갈라지고 있다. 이 개념을 처음 접하면서 받았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중세계이론에 의하면 이 세계는 관측행위가 일어날 때마다 “모든 가능한 양자적 세계”로 갈라지고 있다. 그 중에는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우월한 생명체로 군림하는 세계도 있고, 물리법칙이 생명체에게 적대적이어서 인간이 아예 태어나지 않는 세계도 있다. <초공간(HYPERSPACE), 미치오 가쿠(Michio Kaku) 지음, 박병철 옮김, 김영사 刊>

pixel, 175×150㎝ pigment print, 2018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지하층 전시장에 걸려 있는 대형작품을 바라보며 성큼성큼 그 세계로 들어간다. 아득히 깊고 먼먼 우주 어느 곳에서 단지 소립자로서 ‘나’와 조우한다. 반짝이는 별무리와 두 시공간을 잇는 지름길 웜홀(Wormhole)을 지나 휘어지는 블랙홀의 빛과 교감하는 간섭무늬와 교차한다. 적갈색 브롬(Br)을 보고 검은 회색흑연과 매혹의 빛깔을 발산하는 다이아몬드가 동소체(同素體)라는 사실을 인식하다 패턴반복과 복제, ‘또 하나의 나’를 평행우주에서 만나곤 놀라워했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사유의 흐름이 있었다. 멀리에선 점으로만 보이던 지상의 끈 이론이 통용되는, 낯설지만 친숙한 감정으로 느껴지는 이 휘황찬란한 우주의 연원은 무엇인가? “내 작업 ‘픽셀’은 비트의 분열과 융합의 이합집산이 엮어내는 미개의 행성이다. 이 행성은 태양계를 훨씬 벗어난 탐미의 성간 어느 지점에 있다.”

미지에 대한 영감의 단초

황규태 사진작가
황규태 작가(1938~)는 충남예산이 고향으로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 사진기자를 지냈고 금호미술관, 아트선재센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등지에서 열일곱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60년대 필름 태우기, 차용과 합성, 아날로그몽타주, 이중노출 등 아방가르드운동 일원으로서 활동했고 73년 프레스센터개인전 이후 80년대 디지털이미지에 대한 다양한 실험, 90년대 이후 ‘픽셀’시리즈에 천착해 오고 있다. 이번 ‘픽셀 Pixel’개인전은 3월 7일부터 4월 21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l삼청’ 지하1~2층에 걸쳐 전시 중이다. 근작 30여점을 선보이고 있는 작가를 전시장에 인터뷰했다. “나는 만들지 않았고, 픽셀들을 선택할 뿐”이라고 했다. ‘찍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 등을 선택하고 확대할 때 발현되는 다양한 형태와 색상을 시각화, 물질화한 것이라는 의미와 다름이 없다. 이와 함께 “나는 알몸의 행성에 예술이라는 옷을 입혀놓고 그와 은밀히 음모결탁하면서 환희의 맨발로 춤을 춘다. 나는 오랜 세월 픽셀과 동거동침하면서 그가 보여주는 몸짓과 초월적 반응에 경의하고 있다. 그와 내가 추는 이 봄의 제전은 말레비치의 100년에 바치는 헌사이다”라는 메모를 전했다. 이는 기하학적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미니멀리즘 효시로서 ‘검은 사각형(1915)’의 러시아 화가 카시미르 말레비치(Kasimir Severinovich Malevich, 1878~1935) 작품과 ‘픽셀’연작이 구상적 재현흔적을 제거한 순수추상 탐구라는 점에서 유사성의 접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왼쪽작품=pixel; the rite of bit, 280×670㎝
특히 이번 전시에서 비트에서 큐비트(qubit)의 성립이라는 ‘중첩’을 이용한 양자컴퓨터가 펼치는 미지에 대한 영감의 단초들을 함의하고 있는 듯, 파란 물색 위 노란 산수유 꽃잎이 하늘거리는 것처럼 픽셀을 조합한 새로운 관점의 원형표출은 향후 한국현대사진 1세대 황규태 작가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