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라이프

반복적 노동 기다림의 모호성

서양화가 박철 개인전, 4월15~26일, 다도화랑
  • Ensemble(앙상블), 108×88㎝ Korean paper Natural dyes, 2018
“손바닥은, 이제 감정 위로만 걷는 발바닥이다. 그 자신이 거닐고 있는 하늘의 도로를 비추고 있다. 물을 떠낼 때 물 위로 걷는 것을 익혔고. 우물 위를 지나가는 모든 길의 변신이 된다. 다른 손 안에 나타나서는 그 손들을 풍경으로 만들고, 떠돌다가 간신히 다다라서 그 손들을 도착으로 가득 채운다.”<릴케-후기시집, 詩 손바닥,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刊>

찔레꽃 향기 순박한 여인의 댕기머리를 휘감는 듯 자줏빛 물결무늬는 미묘한 악기의 헤아릴 수 없는 리듬을 포용한 채 미혹의 선율로 어디론가 흘러간다. 한지의 원재료 닥나무가 자란 한반도의 황토서 캐 올린 자색고구마 빛깔처럼 소목(蘇木) 염료를 섞은 신비로운 기운으로 일궈낸 자줏빛, 그런가 하면 오배자를 써서 보라색 색채감으로도 재현해내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옛날부터 농민들의 애경사(哀慶事)에 사용되어 왔던, 오늘날 아쉽게 사라지고 있는 멍석을 소재로 한다. 원형, 수직과 수평 등 이렇게 저렇게도 하여 세부적 형태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묘사해냄으로써 멍석이라는 기능적 의미는 사라지고 텍스추어와 색(色)만 드러나는 변모를 보여준다.

그런 과정엔 오랜 시간의 자취에 드러나는 해진 부분의 자연성이 주는 공간도 있다. 부조화의 조화처럼 각기 다른 패턴으로 여러 가지를 겹치는 가운데 생긴 틈, 그 천연덕스러움이 변화라는 운동성으로 감지되는 것이다. 동시에 격자형받침 등 릴리프한 문양배치는 조형성과 새로운 구도의 질서를 내보인다.

장인정신의 독자적 손작업

박철 화백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4월 15일부터 26일까지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다도화랑에서 총20여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초창기 ‘동창이 밝았느냐’, ‘동서양의 만남’연작을 비롯하여 현재의 ‘앙상블’시리즈에 이르기까지 1985년부터 35년여 동안 한지(韓紙)로만 일관해 오고 있다. 초기연작은 무채색위주로 운용했고 5년여 전부터 한국성의 현대화라는 기치아래 천연염료를 수용한 발색이 강한 순색의 단색을 발표하고 있다.
  • 한지작가 박철(ARTIST PARK CHUL) 사진=권동철
경기도 광주시 소재, 박철 작가의 작업실에서 바라본 제작과정 자체가 수없이 반복되는 지난한 노동의 산물이었다. 한지를 물과 섞어 용해될 때까지 솔로 두드리는데 그 무게감은 상당하다. 걸쭉한 죽처럼 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두들기기 때문에 금방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렇게 하다보면 처음 한지가 만들어졌을 때 썼던 전통접착제인 황촉규가 나오고 찰떡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인력(引力)이 생기는데 그때 천연염료 색을 넣을 때도 있고 작품 포인트가 되는 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 또 하나의 반전이 있다.

화백은 “마치 된장, 고추장의 숙성처럼 이때 물성들이 서로 어우러진다. 내가 의도치 않았던 우연성이 발현되는 것인데 나는 그것을 ‘추상적 현대성의 모호함’이라고 명명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30여 겹의 한지와 홍화, 도토리 등 자연친화적 재료를 혼합하여 견고하게 만들어진다. 나는 사람의 손이라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컨템퍼러리하게 풀어가고 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빛, 바람 등 자연과 함께 오랜 기다림 속에 건조되는 가칠한 표면의 담백한 느낌을 전하는 한지부조 박철 작품은 그렇게 독자적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국성을 드러내는 단색의 추상회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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