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이 사라진 정치, 양극화에 시달리는 경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이해충돌 속에서 우리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부모의 경험이 더이상 자식의 지혜가 되지 못하는 시대의 불행은 우리 모두의 안타까움이다. <주간한국>은 따듯한 감성의 기족 이야기를 애정 어린 필체로 풀어놓으면서 온가족이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최민호 작가의 글을 격주로 소개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과 호흡하고 있는 필자의 작품들을 ‘미노스의 감동단편 다이제스트’로 재각색한 주옥 같은 글들을 통해 우리 삶의 영원한 디딤돌인 가족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하부지, 하부지. 바보새가 뭐야요?” 열 살이 넘었는데도, 할아버지를 하부지라 하면서 어둔한 발음에 눈꼽 낀 눈을 껌벅이며 천진스럽게 물어보는 손자를 보며 할아버지는 가슴이 또 먹먹해졌습니다. “왜, 누가 그러던?” 손자는 좁고 둥근 어깨를 누그러뜨리며, 크고 둥근 눈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응. 동네 애들이 나보고 바보새라고…. 바보새가 뭐야?” 할아버지는 손자를 가슴에 쓸어안았습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이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안타까운 심정으로, 가슴까지 와 닿는 수박만한 머리를, 갓난아기같이 기대고 있는 손자를 안고 망연했습니다. 다운증후군…. 정신지체에 신체의 기능마저 온전치 못한 손자를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하지만 세상의 근심이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같이 명랑하고 행복하기만 한 손자였습니다. 또래 아이들이 놀려도, 짓궂게 괴롭혀도 헤헤거리며 좋아하는 손자를 볼 때마다,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 아들 내외에게 이런 자식이 태어났나 하는 탄식과 함께 내 죄도 거기에 한 몫 있는 양 가슴이 찔려 왔습니다. “응. 바보새란…” 할아버지는 조용하게 말을 했습니다. “훌륭한 새를 말하는 거란다. 바보새는 어렸을 적에는 잘 걷지도 못하고 날지도 못하고 뒤뚱거리고 다녀서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하는데, 어른이 되면 훌륭한 새가 된단다. 바람이 불면 다른 새는 다 둥지에 숨는데 바보새는 바다로 나가서 그 바람을 타고 이 세상에서 가장 멀리 날 수 있고, 가장 높이 나는 큰 새가 된단다. 그래서 세상을 구하는 새가 된단다.” 손자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주고 싶었습니다. 바보새라고 놀림을 받는 손자가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이해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열심히 바보새를 훌륭한 새라고 추켜세워 주었습니다. 손자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할아버지를 눈이 뚫어져라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앨버트로스. 할아버지는 앨버트로스가 바로 바보새라고 불리워진다는 것을 생각해 내곤, 바보새가 자라면 앨버트로스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손자에게 앨버트로스를 이해시켜 줄 수 있을까요?

손자는 이튿날 할아버지에게 또 물었습니다. “하부지, 하부지, 바보새가 뭐야?” 할아버지는 손자의 물음에 깨달아지는 점이 있었습니다. ‘이 녀석은 바보새가 무엇인지 안다…’ 할아버지가 바보새가 훌륭한 새라는 말에 고무되어 있는 것입니다. 칭찬과 격려를 자꾸 듣고 싶은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그림책을 꺼냈습니다. 그림을 보여 주면서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고개를 흔들며 주걱 같은 넓적한 발로 어기적어기적 걷는 새. 날개가 너무 커서 땅 위에서는 날개를 질질 끌며 뒤뚱거리며 걷는 새. 새인데도 날지 못하는 새. 바보. 그러나 어른이 되면 바람이 부는 바닷가 절벽 위로 힘겹게 기어오르는 새.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다른 새들은 다 숨는 날, 바람에 맞서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새.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긴 날개로 새끼의 먹이를 찾아 바다를 가로질러 나는 새. 그리하여 세상을 구하는 새. 땅에서는 바보라 불리지만, 하늘에서는 가장 멋있는 새들의 왕자.” 할아버지는 앨버트로스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손자에게 용기를 줍니다. “바보새야. 너는 나중에 세상을 구하는 멋있는 새가 될 거야.” 손자는 두 눈을 껌벅이며 할아버지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손자는 모습이 더 바뀌었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눈은 먼 곳을 바라보는 양 더 멍해졌고, 걸음걸이는 더 어기적거렸습니다. 바보새가 훌륭한 새라고 하니 그 흉내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더 바보같이 보였습니다. 이런 모습에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은 바보새를 더욱 놀리고 비웃었습니다. 바보시늉을 하며 따라다니며 골렸습니다. 엄마와 할아버지는 가슴이 미어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소원 한 가지만 들어주세요. 저를 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주세요. 저 아이를 두고 저는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저 아이보다 딱 하루만, 딱 하루만 더 살게 해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듣는 할아버지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하지만 바보새는 사슴같이 선하고 비둘기처럼 행복해 하기만 했습니다. 이런 천진스런 모습에 엄마는 바보새를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보새를 하늘이 주신 복덩어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보새가 없는 행복은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보새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하루는 바보새가 느닷없이 말하였습니다. “엄마, 저기 건너마을 새끼 강아지가 밥 달라고 울어. 어서 밥 줘.” 밑도 끝도 없는 바보새의 말에 엄마는 영문을 몰랐습니다. 래서 건성으로 “그래, 그래, 알았어” 하며 넘겼습니다. 며칠 후에 바보새가 또 말하였습니다. “옆집 앵두나무 집 개가 아프대요. 다리가 아프대요.”하였습니다. 이번에도 무심코 넘겼습니다.

장날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바보새를 데리고 장에 갔습니다. 장에서는 마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바보새가 엄마 손을 잡아끌며 말했습니다. “저기, 저기, 강아지. 배고픈 새끼 강아지 있다.” 바보새가 가리키는 곳에 건너마을 아저씨가 어린 강아지를 몇 마리 팔고 있었습니다. 기르던 개가 새끼를 낳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바보새가 강아지 낳은 것을 알았을까? 바보새에게 물어 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바보새가 앵두나무집 개가 다리를 다쳤다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났습니다. 확인해 보았습니다. 과연 앵두나무집 개가 덫에 걸려 다리가 크게 다쳐 있었습니다.

엄마는 바보새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에게 무엇인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보새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건너마을 강아지의 낑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다리 다친 개의 끙끙대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멀리서 오는 발자국 소리를 먼저 들었고, 그것이 아빠의 발자국 소리인지, 할아버지 발자국 소리인지 분명히 구분하여 듣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산새 소리, 짐승 소리를 뚜렷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엔진 소리로 누구의 자동차인지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바보새에게 하늘이 주신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보새는 그런 특별한 능력을 알 턱이 없었습니다. 바보새의 일상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놀림 받으면서 천진난만하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바보새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하늘이 왜 이런 특별한 능력을 주셨는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했습니다.

엄마는 바보새를 음악선생님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피아노 건반소리를 들려주며 바보새의 소리에 대한 능력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바보새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의 소리를 정확히 기억하며 분별하였습니다. 시험을 하는 선생님도 바보새의 능력에 놀라워했습니다. 선생님은 이를 ‘절대음감’이라 하였습니다. ‘천사의 귀로군요. 하늘의 축복입니다. 피아노 조율을 시킨다면 누가 이 아이를 따라오겠어요.” 엄마는 바보새에게 피아노 조율 공부를 시켰습니다. 갓난아이가 젖을 빠는 공부가 필요 없듯이 사실 바보새에게 소리를 구분하는 공부란 필요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바보새는 유명한 피아노 조율사가 되었습니다. 바보새는 도시의 유명한 오케스트라 악단에 초빙되어 조율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바보새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나라에 뜻하지 않은 큰 변란이 닥쳐왔습니다. 전쟁이 터진 것입니다. 세상은 발칵 뒤집혀졌습니다.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로 나가야 했습니다. 나라 안이 공습으로 언제 누구에게 죽음이 닥칠지 모를 상황이 되었습니다. 수없는 비행기가 하늘을 날았습니다. 사람들은 바깥에 돌아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적군기인지 아군기인지, 수송기인지 전투기인지 모를 수많은 비행기들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벌집에 숨듯 방공호에 숨었습니다. 때를 놓칠 때도 많았습니다. 대피가 늦어져 작렬하는 폭격에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습니다. 바보새도 더 이상 피아노 조율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을로 돌아와 공습을 피하며 숨어 지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바보새가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적기다. 적기가 온다. 모두 숨어라.” 조용한 하늘에 적기가 온다는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적기가 나타났습니다. 마을을 폭격하였습니다. 엄마는 바보새의 팔을 잡고 군부대 지휘관에게 달려갔습니다. “우리 아들에게 마이크를 주세요. 우리 아들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어요. 어서요.” 지휘관은 바보새의 이야기를 듣고, 곧 비행기 엔진 소리에 관한 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놀랍게도 바보새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거리의 비행기 소리를 듣고, 그것이 적기인지 아군기인지, 또 무슨 비행기인지를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보새는 바빠졌습니다. 하루 종일 커다란 확성기로 방송을 했습니다. “조금 있다 오는 비행기는 아군기이니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적기입니다. 위험합니다. 수십 대 공습하러 오고 있습니다. 숨으십시오.” 바보새의 예고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미리미리 공습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공습으로 인한 희생은 없었습니다. 바보새의 방송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났습니다. 온 나라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바보새가 사는 마을에도 평온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보새는 마을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마을의 촌장이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을 구해준 새가 있습니다. 그 새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공습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새를 기리고 감사하는 동상을 세우려고 합니다. 바보새입니다. 그러나 이제 바보새가 아닙니다. 비바람이 몰아쳐 올 때면 그에 맞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 바로 앨버트로스의 동상입니다. 앨버트로스의 날개에 저기 있는 바보새의 얼굴을 새길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습니다. 바보새는 눈만 껌벅껌벅하였습니다. 세상을 구하는 새. 바보새는 할아버지가 어렸을 적 말씀하신 앨버트로스였습니다. 바보새의 엄마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제가 우리 바보새 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는 제 기도를 취소해 주세요. 우리 바보새를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저보다도 훨씬 오래 더요. 제발요.”



● 미노스 최민호 작가 프로필

본명은 최민호,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했다.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에 이어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동경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 행정학 박사를 취득한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공직퇴임후 미노스라는 필명으로 작가로 변신해 단편집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딸이니까”를 출간해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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